첫 일주일, 내가 지켜낸 작은 평온들

조용히 지나간 고비와, 하루하루 쌓여가는 감사에 대하여

by 지혜로운 기록


AC 항암제 1차 투여를 받은 날, 나는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사람마다 반응이 다르다는 말을 들으니, 곁에서 바로 도움 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돌아보면, 그 선택은 참 지혜로웠다.


입원 첫날과 둘째 날은 거의 잠으로 흘러갔다.

눈을 뜨면 배가 고팠고, 밥을 먹고 나면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몸이 원하는 대로 맡겨보자고 마음먹으니 오히려 편안했다.


AC 항암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메스꺼움과 구토라고들 한다.

식당 앞을 지날 때 나는 냄새에 살짝 울렁거리긴 했지만, 막상 식탁에 앉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밥맛이 돌아왔다. “2~3일 뒤면 본격적으로 힘들 거”라던 주변의 우려도 나와는 달랐다.

입원한 닷새 동안 나는 세 끼를 꼬박꼬박, 맛있게 먹고 퇴원했다.


‘이렇게 무사히 지나가다니.’

항암 8차 중 첫 고비를 조용히 넘긴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요양병원에서는 내가 거의 가장 어린 환자였다.

어르신들은 “왜 어린 사람이 아프냐”며 안타까워하셨지만, 또 한편으론 “어쩜 이렇게 밝고 유쾌하냐”고 내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덕분에 자신들도 기운을 얻는다며 웃어주셨다.


퇴원 후 그 이야기를 전하자, 아빠는 “그건 밝은 엄마와 코미디언 같은 아빠를 닮아서지”라며 장난스레 웃으셨다.

그 말에 우리 가족도 함께 웃었다.

요즘 우리 집엔, 감사하게도 웃음이 많다.


그리고 오늘.

항암 1차 투여 후 정확히 일주일째 되는 날, 영남대병원 외래 진료가 있었다. 케모포트 수술 부위의 실밥을 제거하는 날이기도 했다.


혈액검사와 X-ray를 마친 뒤, 고성애 교수님과 마주 앉았다.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네, 식사도 잘했고 일상도 크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교수님은 수치를 보며 환하게 웃으셨다.

“혈액검사도 항암 전과 거의 동일하게 아주 좋아요.”

그 말에 안도와 감사가 동시에 밀려왔다. 2주 후 2차 항암 일정을 잡고 진료실을 나섰다.


주사실에서는 케모포트 실밥을 뽑았다.

수술 부위는 괜찮았지만, 밴드가 붙어 있던 자리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어 소독을 받았다. 잠시 놀랐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는 말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 미용실에 들렀다.

“일주일 후부터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어요”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 있었다.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귀밑 5센티 단발로 잘라주세요.”


평소였다면 한참을 고민했을 텐데, 이번엔 결심이 빨랐다.

거울 속의 나는 40대 시절 엄마와 닮아 있었고, 엄마도 “진짜 똑 닮았다”고 웃으셨다.

거울 너머 닮아 있는 두 사람.

그 순간이 오래 남았다.


저녁, 하루를 마무리하며 나는 기도했다.


“오늘도 평안과 좋은 컨디션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암 1차 후, 흔히 고비라고 불리는 첫 일주일을 잘 넘겼다.

남은 2주도 지금처럼 건강한 루틴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많이 웃었고, 감사할 일이 참 많았다.

당신의 하루도 그러했기를.


나는 오늘도 충분하다.

그리고 당신도. 변함없이.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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