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버틴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
때로는 큰 희망보다,
아주 작은 기적이 하루를 견디게 해준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영남대병원 첫 진료 다음 날, 나는 곧바로 병원에 입원했다.
4인실을 신청했지만 우연히 2인실을 배정받았고,
간호간병 통합 병동이었음에도 엄마는 “혼자 보낼 수 없다”며 함께해 주셨다.
아산병원에서는 보호자 출입이 까다로웠는데
여긴 조금 더 여유가 있어, 엄마는 곁에 머물며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40살이 넘은 나를 위해 또 병실 문턱을 오가고,
내 걱정에 얼굴이 수척해진 엄마.
눈물 나게 고맙고, 미안하고, 또 사랑합니다.”
입원 첫날은 정신없이 흘렀다.
혈액검사, CT, 심장초음파…
긴장 속에서도 기운을 차리려 노력했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바빠지는 날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갑자기 케모포트 수술이 잡혔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이동하는 짧은 복도.
그 길이 어쩐지 조금 길게 느껴졌다.
부분마취가 들어가고,
따끔한 순간 뒤에 찾아온 낯선 압박감.
그럼에도 마음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이건 다시 살아가기 위한 길이야.”
그 생각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곧, 첫 항암이 시작되었다.
붉은 약물이 몸속으로 천천히 들어올 때,
간호사님은 차분히 부작용을 설명해 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독한 만큼, 암세포도 모두 사라지길.
나는 이겨낼 거야.”
이상하게도 너무 졸려
그 한 시간 내내 꿀잠을 자 버렸다.
그 사실이 어쩐지 우습고 또 감사했다.
첫 항암을 이렇게 지나가다니
이것도 큰 행운이라 생각했다.
더 큰 행운도 있었다.
옆자리 환자분이 다른 병실로 이동하면서
그날은 2인실을 혼자 쓰게 되었다.
작은 기적 같은 하루였다.
넷플릭스를 보고,
엄마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고,
그렇게 나의 첫 항암은
걱정보다 훨씬 부드럽게 지나갔다.
내일이면 퇴원이다.
친정집에 머물까 고민했지만
“힘든 순간을 부모님께 다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
남편과 상의 끝에 요양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비용으로
좋은 병원을 찾은 것도 선물 같은 행운이었다
첫 항암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니
마음에 가장 먼저 차오른 건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였다.
누군가의 진심과 기도가 나를 감싸고 있다는 걸
하루 종일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불편했고,
많이 고단했지만,
그보다 더 큰 평안이 있었다.
오늘도 버텼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된다.
나는 아직 부족하고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충분하다.
그리고 당신도요.
오늘을 살아낸 우리 모두,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