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12일째, 두려움과 사랑이 동시에 쏟아져 내린 순간에 대하여
AC 항암 1차 후 12일째.
운동 후 샤워를 하던 순간,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나갔다.
2주쯤 후부터 빠지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마음 한켠이 툭 내려앉았다.
우리 아빠는 70이 넘은 지금도 머리숱이 풍성하다.
남편은 늘 “장인어른 머리숱은 상위 0.1%”라며 부러워하곤 했다.
나 역시 그 피를 닮아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빠지기 시작하면 바로 짧게 정리해야지’ 하고 미리 마음을 정해두었던 터였다.
그런데 엄마는 “아직은 괜찮다”며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곧 휴가를 앞둔 나는 마음속으로 ‘조금만 더 버텨주면 좋겠다’고 조용히 기대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 기대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운동 후 젖은 머리를 감기 시작하자, 어제보다 몇 배는 더 빠져나온 것이다.
헹굴수록 손에 잡히고, 서로 엉켜 수습이 어려웠다.
심호흡을 하고 빗을 들었지만,
우두둑—
빗질을 할 때마다 바닥과 어깨에 머리카락이 눈처럼 쌓였다.
거울 속 나는 아직 단발머리였다.
머리숱이 많았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더 많이 빠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흔들렸다.
남편과 통화를 하던 중, 내 목소리가 기운이 없다는 걸 눈치챘는지 그는 다정하게 달랬다.
연애할 때처럼 한 시간 넘게 통화하며 마음을 풀어주었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고마워, 내 사람.
혹시 몰라 ‘항암 두건’을 두 개 주문했다.
자는 동안에도 빠질까 조심스레 잠들었고, 아침에 베개를 확인했을 땐 다행히 깨끗했다.
하지만 내가 움직이는 자리마다 머리카락이 떨어져 돌돌이를 들고 즉석 청소부가 되었다.
오후, 주문한 두건이 도착했다.
써보는 순간 생각했다.
‘머리의 힘이 이렇게 컸던 거구나.’
항암 때문에 부은 얼굴이 더 동그랗게 보였지만, 아빠는 “너무 예쁘다”며 웃어주셨다.
엄마는 매 끼니 정성스레 만들어주고, 아빠는 곁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남편은 매일 연락을 하며 마음을 다독여 준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니, 나도 잘 견뎌내야지.
아마 내일이면 쉐이빙을 하게 될 것 같다.
거울 속 모습이 낯설겠지만,
이 또한 내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랄 날이 오기 전까지,
두건이든 모자든 가장 예쁜 걸 골라 당당하게 걸을 생각이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우리 조금 울어도 괜찮고, 잠시 흔들려도 괜찮아요.
머리카락처럼, 마음도 언젠가 다시 자라나니까요.
JH, 힘내.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의 속도가 얼마나 느리든
괜찮습니다.
우리는 결국 다시 피어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