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과 두려움 사이에서 나는 ‘충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T항암 5차와 6차 사이,
몸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
AC 항암 4차를 모두 마치고,
오늘부터는 T 항암이 시작되었다.
진료실에서 고성애 교수님은
변함없이 “컨디션이 정말 좋다”며 나를 격려해 주셨다.
궁금했던 작은 부작용들,
앞으로 이어질 치료 과정도 하나씩 물으며
마음을 천천히 가다듬었다.
교육 간호사 선생님은
“AC 항암 많이 힘드셨죠?”라고 물었다.
나는 생각보다 무난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잠시 놀란 듯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정말 드물게 그런 분이 계신데,
그 몇 분 중 한 분이신 것 같아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운이 좋아서라기보다,
내 몸과 마음이 끝까지 버텨준 덕분이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5차 항암도 어느새 끝났다.
한숨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모든 것이 지나가 있었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고 기뻤다.
“이제 세 번만 더.”
그 숫자가 그날의 나에게는
생각보다 훨씬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
그러나,
T 항암 3일째 되는 날,
나는 조용히 벽을 만났다.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마치 뼛속까지 부서질 듯한 근육통이 밀려왔다.
발바닥은 저려서 걷는 것조차 힘들었고,
입맛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이 “T 항암은 그래도 괜찮다”고 했지만
내 몸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이제 와서 더 힘들어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다행히 요양병원에서 맞은 진통제 주사 덕분에
한숨을 다시 돌릴 수 있었다.
이번엔 5일이 아니라
8일을 천천히 쉬며 회복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모님의 눈빛엔 걱정이 먼저 담겨 있었다.
몸무게가 3kg이나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밥과 엄마의 손길은
어떤 약보다도 빨랐다.
며칠 만에 다시 살이 붙고,
기운도 조금씩 돌아왔다.
역시,
사랑은 면역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
그리고,
몸은 조용히 6차를 향해 가고 있었다.
5차부터 약이 T 항암으로 바뀌면서
몸은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손발 저림, 근육통,
발바닥을 찌르는 듯한 통증.
하나하나가 일상 속에서
자기 존재를 분명히 드러냈다.
그래서 6차가 다가올수록
마음 한편이 조용히 긴장되었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무서웠다.
진료실에서 지난 5차의 부작용을 말씀드리자
교수님은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부작용이에요.”
이번엔 진통제를 처방받았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근육통은 지난번보다 덜했다.
그 ‘조금 덜한 고통’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아픈 사람이 아니면 모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식도염이 강하게 찾아왔다.
삼키는 것조차 아픈 날들이 이어지며
‘먹는 일’이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숙제가 되었다.
미각은 거의 사라져
좋아하던 음식들도
입안에서는 그저 ‘질감’만 남기고 잠깐 머물렀다.
일주일 가까이 밥을 거의 먹지 못하고
과일로 하루를 버티듯 이어갔다.
그런데도 체중이 크게 빠지지 않는 건
과일의 당 때문인지,
아니면 몸 곳곳에 자리한 부종 때문인지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다.
⸻
눈썹도, 속눈썹도,
심지어 코털까지 빠졌다.
외출을 하면 콧물이 주르륵 흐르고
매운 음식을 먹지 않아도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거울 속의 나는
점점 낯설어졌고,
점점 더 ‘아파 보이는 사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불편함이 찾아왔다.
눈의 통증이었다.
건조하고, 뻐근하고,
눈을 뜨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 날들.
눈이 시리면 머리까지 지끈거렸고
두통은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하루를 따라다녔다.
몸의 아주 작은 기관 하나가 아프기만 해도
그 파동이 온몸으로 퍼져
하루 전체의 리듬을 흔들어 놓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배웠다.
요즘의 나는
예전의 얼굴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피로가 내려앉은 얼굴,
사라진 눈썹과 속눈썹,
부어 있는 눈가를 바라보며
‘아, 내가 정말 아프구나.’
그 사실이 더 또렷이 다가온다.
그래서 가끔은
“못생김을 장착했다”고 스스로를 웃기려 하지만,
사실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는 날이 더 많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거울을 멀리 두는 날들이 늘어났다.
⸻
그런데도,
그 멀어짐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나를 지켜주는 힘을 하나 발견했다.
꾸미지 못하는 하루도,
예쁘지 않은 얼굴도,
지금의 나는 그저
‘버티고 있는 나’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걸
조금씩,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남은 항암은 두 번.
아직 끝은 아니지만,
여기까지 온 내 몸과 마음이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만큼은
그 사실을 조용히 인정해 주고 싶다.
그리고 믿는다.
이 길의 끝에서
지금보다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나는 다시, 나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을.
⸻
나는 오늘도 충분하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지금 이 순간을 버티고 있다면
이미 충분하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고
천천히 가도 괜찮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살아내고 있으니까.
그거면 된다.
함께 걸어요.
끝까지, 우리답게.
“오늘도 버틴 나에게,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당신에게.
우리는 이미 기적처럼
잘 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