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시작된 회복의 여정
6월 25일, 수술 당일
아침 8시 30분. 다빈치 로봇으로 유방 전절제와 복부 자가조직 재건술이 시작되었다.
수술은 무려 10시간 반 동안 이어졌다.
그 긴 하루는 기억조차 없다. 진통제의 몽롱함 속에서 눈을 떴다 감았다, 다시 감았다 떴을 뿐이다.
6월 26일, 첫째 날
통증보다 더 힘들었던 건 움직일 수 없음이었다.
욕창 방지를 위해 두 시간마다 몸을 뒤집어야 했고, 다리는 기계 압박 속에서 부종을 빼내고 있었다.
바싹 마른 입술에 물 적신 거즈를 대며 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내 몸이 견뎌내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했다.
6월 27일, 둘째 날
소변줄이 제거되었다. 이제는 스스로 일어나야 했다.
과연 내가 걸을 수 있을까?
발을 땅에 딛는 순간, 마치 다시 태어난 아기처럼 어기적거리며 걸음을 떼었다.
처음엔 엄마의 손을 잡고, 저녁 무렵엔 혼자 링거 지지대를 끌며 화장실까지 다녀왔다.
그 짧은 걸음이 왜 그렇게 눈물이 날 만큼 고맙던지.
6월 28일, 셋째 날
붓기가 빠지고, 수액 줄도 하나둘 제거되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병실 복도를 한 바퀴 걸었다.
짧은 발걸음이었지만, 그 길은 분명 나를 세상으로 데려오는 길이었다.
6월 29일, 넷째 날
머리를 감지 못한 지 나흘째. 지성 피부인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남편을 설득해 드디어 머리를 감았다.
머리칼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 그 순간, 나는 전신으로 살아 있음을 느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은 환자 같지 않아 보였다.
6월 30일, 다섯째 날
몸에 꽂혀 있던 바늘이 모두 제거되자, 갑자기 자유로워졌다.
의욕이 앞서 복도를 오래 걸었다가, 배 흉터가 붉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몸은 아직 회복 중이라는 사실을, 몸이 스스로 알려주었다.
7월 1일, 여섯째 날
교수님의 최종 결과.
암의 크기는 6센티미터, 전이된 림프절은 두 개.
의무기록은 냉정했고, 그 결과는 내게 ‘유방암 3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순간 눈앞이 아득해졌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바라지 않았던 길이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
그러나 마음을 곧게 세웠다.
재발에 떨며 사느니, 끝까지 해내고 다시 살아가자.
7월 2일, 일곱째 날 — 퇴원
배액관 하나를 품은 채 병원을 나섰다.
내 가슴은 낯설었지만 동시에 분명 나의 것이었다.
배에는 길게 흉터가 남았지만, 그 흉터마저도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8박 9일.
의료진은 내게 천사 같았다.
나는 그저 감사했고, 그 감사로 마음이 가득 찼다.
수술비는 예상보다 컸다. 그러나 다행히 실손보험이 곁에 있었고, 그보다 더 값진 건 내 삶이 아직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퇴원, 그리고 또 다른 시작
나는 곧장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걸음은 여전히 구부정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곧게 펴져 있었다.
수술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건넌 지금,
항암과 방사선이라는 또 다른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파도마저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