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복을 벗고 나를 마주하다
오랜만에 사복을 입으니 내 모습이 낯설었다.
배액관이 아직 하나 남아 있어 루즈핏 셔츠와 플리츠 팬츠로 감추었지만, “이제 환자복이 아닌 나”라는 사실이 기분을 바꾸어 주었다.
요양병원 셔틀버스를 타고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옆자리에 앉으신 분이 항암을 마치고 방사선 치료 중이라고 하셨다. 나도 곧 항암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항암 생각보다 괜찮으니 지레 겁내지 말라”며 따뜻한 격려를 건네주셨다. 예상치 못한 격려였다. 같은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말. 그 한마디에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손병호 교수님은 수술 부위를 확인하시며 “깨끗하게 잘 되었다”고 하셨다. 처음 발견된 종양은 2개였지만, 수술 후 확인한 결과 흩어진 암이 이어져 있어 총 6cm, ‘3기 초’라고 했다.
림프절은 15개를 절제했고, 그중 2개에서만 전이가 확인되었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이어질 것이며, 5년간 호르몬 약과 주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버제니오’라는 약 이야기도 나왔다. 6cm 이상의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효과가 좋은 약. 하지만 비급여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진료실을 나오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멍하니 서 있자, 남편이 다가왔다.
“달달한 게 필요할 것 같아서.”
손에 든 생과일주스를 건네며 웃는 남편. 그 미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내 기분을 먼저 살피는 사람. 고맙고, 미안하고, 또 다행이었다.
저녁에는 언양불고기를 함께 먹으며 “잘 먹고 힘내자”는 말에 다시 용기를 냈다.
다음날은 성형외과 진료였다. 드디어 마지막 배액관을 제거하는 날. 함께 셔틀버스를 탄 환우 분들이 “축하해요”라며 웃어주셨다. 같은 길을 걷는 이들과 나누는 공감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그날 또 한 번 깨달았다.
엄진섭 교수님은 배에 고여 있던 물을 빼주시고, 복원된 가슴과 복부를 확인하셨다.
“양쪽 크기가 아주 잘 맞았어요. 브라는 일주일만 더 하시고, 복대는 오늘부터 빼셔도 됩니다.”
불편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병원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나는 용기를 내어 내 몸을 온전히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가슴은 예상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복원되어 있었다. 아직 감각은 둔하고 흉터도 선명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거라 믿는다. 달라진 배꼽과 복부도 언젠가는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겠지.
앞으로 항암, 방사선, 호르몬 약물치료와 주사까지 긴 치료 여정이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껏 잘 버텨왔듯이, 남은 길도 잘 걸어내고 싶다.
언젠가 내 몸속 모든 암세포가 사라지고, “완전 관해”라는 말을 듣는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나는 여전히, 충분하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