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을 읽고...

<설전 – 성철, 법정> - 2016년 5월

by 도토리

인간은 누구나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이를 위해 학문에 매진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종교를 통해 진리를 깨우치고자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류는, 우리는,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정답이 따로 없는 이런 의문점에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들이 많고 많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의 스님이 불교를 통해 어떻게 진리에 다가서는지를 엿 볼 수 있는 재밌는 참고서를 한 권 읽어보게 되었다.

스님들의 대화인 만큼 이 책에서 전개되는 모든 이야기는 불교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그 핵심에는 결국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날카롭게 파고드는 두 사람의 철학자가 있었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은 홍보문구였던 “나는 진리를 위해 불교를 택한 것이지, 불교를 위해 진리를 택하지는 않았습니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 한마디로 압축될 수 있는 것이다. 종교인이 종교를 수단으로 선택했다는 말은, 이 시대 대부분 종교가 신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있어 굉장히 자극적인 표현임이 분명하다. 마치 내가 금기를 어긴 것 같은 충격을 주는 이 한 마디는 범인이 했었다면 별 볼 일 없는 감정적인 표현에 불과했겠지만, 오랜 기간 불교에 몸담고 있던 스님의 입에서 나왔기에 오히려 신선한 메시지가 되었던 것 같다.

모든 종교 안에도 종파가 있는 만큼 법정과 성철이 하는 모든 이야기가 선종의 근본정신을 말하는지 알 길은 없다. 허나 그들의 이야기에는 적어도 두 사람이 지향하는 불교의 방향이 담겨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불교의 핵심은 진리가 가리키는 이상향의 끝점은 결국 자신 안에 있는 것이며 그것을 깨우치는 순간 내가 곧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것에 있다. ‘된다’는 표현이 곡해를 불러올 수 있는데, 성철은 여기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한 번 더 강조한다. 깨달음이 범인을 부처라는 이상의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간은 스스로 이미 부처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깨닫는 순간이 모든 사람이 다 부처님이라는 걸 알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해탈하여 부처가 될 때 “깨달은” 것은 원래 모든 인간 안에 이미 부처가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 모든 생명 안에 이미 우주 만물의 이치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세상의 이치는 경전이나 학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생명 안에 이미 내재하는 것이라니 실로 재미있는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108배라던가 묵언 수행, 혹은 수많은 경전 등은 결국 자신 안의 부처를 찾기 위한 ‘방편’의 하나이며, 결국 그 이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마음의 눈을 뜨는 것에 있다고 성철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눈을 뜨고 내가 곧 부처이며, 모든 생명이 다 부처님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 마음으로 세상을 마주한다면 이 세상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며 다소 공상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자신은 그렇게 믿는다고 말하는 노스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은 자아 성찰을 기반으로 진리를 추구한 결과에 관한 것이다. 말이 좋아 자아 성찰이지 이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완벽히 절제된 자아 성찰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골방철학자가 되기 일쑤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자신만의 논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개똥철학을 만드는 이들이 요즘 한둘인가. 진리는 세상을 향하는 송곳과 같아야 하는데 이런 자들은 자신을 지키는 울타리를 만드는 자들이다. 세상의 현상들이란 생각보다도 더 복잡해서 이를 정리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저 입맛에 맞는 논리를 세우다 보니 현실과 논리가 모순을 일으키고 그러다 보니 종래에는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이건만 이런 사람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두 사람의 스님을 보면서 자아 성찰을 바탕으로 이토록 절제되고 정제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이들의 대화에 녹아 있는 복잡한 철학을 유지한 채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지고 계속해서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 경이로웠다. (책에서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나름의 대안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다) 마음이 편해지고자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진리 그 자체를 추구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메시지는 책 속 일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성철에게는 언제나 ‘한 말씀’해달라는 유명인들이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그는 일관되게 대답했다고 한다.


내 말 잘 들어. 중한테 속지 말어. 나, 중이야. 나한테 속지 말어. 도를 아는 사람이니 뭐니 그런 뜬소문에 속지 말란 말이야.


자꾸만 중한테 속으려 드니, 할 수 없이 철망을 치고 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마저 고고하게 보는 사람도 있더라고.

결국 그의 말처럼 “나를 찾아오지 마시고, 부처님을 찾아오시오.”라는 말이다. 선종(우리나라 불교는 여러 종파 중 선종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본다.)에서는 해탈의 경지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를 넘는다고 보고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운다. 즉, 진리는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안에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그대들 안의 부처님을 찾으라는 것이고, 성찰을 반복하며 진리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라는 노승의 조언이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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