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쳐 - 더글라스 케네디> - 2016년 3월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책이 좋으면 좋은대로, 별로면 별로인 대로 개인에게 영향을 주기 마련이고, 그 책의 핵심주제이던 한 부분이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기 마련이다. 책이 좋고 나쁘고는 개인차가 있기 마련인데, ‘빅 픽처’야 말로 정말 애매한 책인 것 같다.
유산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 적당히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자라, 부모의 기대와 달리 사진가를 꿈꾸며 집에서 보내주는 용돈으로 히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세상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걸 원망하던 소년은 용돈이 끊기고 주변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불안감이 엄습하자, 꿈을 포기하고 언제나 자신을 기다려주던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간다.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로스쿨에 들어갔고, 결국 월가의 변호사로써 ‘단순한 서류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운 삶을 보장받게 된다. 그런 그의 삶은 행복해졌을까?
3부로 구성된 소설은 1부에서 바로 그 답을 밝힌다. 물론 책을 보지 않아도 뻔한 답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원하지 않은 삶을 선택했는데 행복할 리가 없다. 아무나 사기 어려운 고가의 사진 장비를 사들여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포기했으니 공허할 뿐이다. 안정적인 삶이라고는 하나 정신상태와 가정상황은 전혀 안정적이지 못하다. 바쁜 일상에 정신은 피폐하고, 아내는 언제나 그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신경이 날카로운 그의 언행은 이런 상황을 늘 더욱 악화 시킨다. 그럼에도 이 가족이라는 이름의 덫이 언제나 그를 이 끔찍한 안정의 삶에서 도망칠 수 없도록 한다.
주인공 벤은 아내의 내연남을 죽이게 되면서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자신의 삶을 잃게 된다. 자살할 용기도, 자수할 용기도 없던 그는 신탁유산 부서의 변호사로서의 장기를 살려 내연남의 시체로 자신이 죽은 것처럼 위장하고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내연남의 이름은 게리로, 게리로 살아가게 된 벤은 자신의 터전이던 월가와 동부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꿈꾸던 사진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항상 초조함에 떨며 살아간다.
하지만 주인공은 서부에서 결코 ‘불행한’삶을 살지는 않는다. 그는 그곳에서 벤이 아닌 게리로써 새로운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직업 사진가로써의 꿈도 어느정도 이루게 된다. 그리고 종반에는 우연한 계기로 화재 사건의 현장을 찍은 그의 사진이 전 세계 1면에 이용되면서 순식간에 유명인이 될 위기 아닌 위기에 처하기까지 한다.
이때 주인공(벤-게리)의 지인이 게리의 차를 대신 운전하던 중 사고로 사망하는데, 사체가 심하게 훼손되어 게리가 죽은 것으로 보도 된다. 결국 두 번째 이름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결말에서 주인공은 결국 어떤 벌도 받지 않는다. 그저 서부에서 만난 사랑하는 여인과 새로운 장소로 떠나 새로운 이름(앤드류)으로 다시 삶을 시작하게 된다. 기이한 운명이 살인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에는 뚜렷한 벌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소설이 그런 인과응보의 성향을 띠고 있지도 않다. 주인공의 이름이 두 번이나 바뀌는 조잡한 플롯을 만들어내면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벤-게리-앤드류(모두 주인공의 이름이다.)는 안정된 삶이라던가 책임져야할 가정 등의 의무에 얽매인 삶을 살았고, 더욱이 그러한 의무는 자신의 꿈을 희생하고 선택한 결과였다. 언제나 그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막상 벗어나게 되었을 때는 기구한 운명만이 계속되었고, 결국 다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한곳에 정착하게 된다. 마지막장을 보면 주인공은 벤-게리의 삶에서 완전히 해방된 삶을 시작했음에도, 그곳에서 떠나고 싶은 욕구가 들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된다고 나직이 말한다. 어느날 충동을 이기지 못한채 가족들을 두고 서부 끝에서 동부를 향해 달려가다가도 그는 결국 차를 돌려 돌아오게 된다. 왜냐고? ‘어쩔 수 없다’고 주인공은 대답한다.
기껏 벗어 던진 삶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왜 다시 선택했는가? ‘어쩔수 없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원하지 않게 얻은 의무라 해도 내가 지고 있는 짐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주인공이 그 과정을 통해 깨달았다는 뜻인가 유추해 볼수는 있겠다. 허나 그는 자신의 짐을 벗어던진 자유로운 삶을 산 적이 없다. 게리로 살아가던 시절의 주인공은 사진을 찍을 수는 있었지만 여전히 살인을 비롯한 과거에 얽매여 충분히 자유로이 살지 못했다. 그가 이러한 제약 없이 충분히 자유로운 삶을 만끽했어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장치 정도는 있었어야 납득 가능한 추측인 것 같다.
결국 책의 내용을 용 써서 해석해야 했다. 책 자체는 프랑스에서 굉장히 잘나갔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묘사도 흥미롭고, 초반의 몰입도는 스릴러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능력이 있었다. 재미는 있었지만, 무언가를 느낀 것은 별로 없었던거 같다. 아무리 재미 없는 책도 내 나름의 느낀점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요상한 경험을 했다. 내가 가장이 되본 적도 없고, 완전한 사회적 의무를 진 적도 없어서 작품의 깊이를 느낄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일까. 일단은 그런 것으로 해두고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