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 올더스 헉슬리> - 2016년 2월
소설 ‘멋진 신세계’ 속에서 세상은 완벽히 통제되어 있다. 알파에서 엡실론에 이르는 계급에 따라 인간이 분류되고 사회적 역할이 부여된다. 그들은 계급에 맞는 신체를 받고, 그에 맞는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세상은 외부로부터 차단되어 있고, 사람들은 물리적, 정신적 통제 속에서 그들 자신의 삶에 만족하게 되어 있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 세뇌교육의 가장 핵심 문장에 충실하게 그들은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으며, 어떤 사람과도 사랑할 수 있고, 그것이 권장되는 사회를 살아간다. 삶은 기본적인 유희와 (즐거운 일이라고 세뇌된, 그리고 적성에 맞는) 업무로 가득 차 다른 사건이 끼어들 틈이 없고, 설사 우연한 고통이 개입되더라도 ‘소마’라고 불리는 약 한두 알이면 행복감으로 가득 찬 편안한 상태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공유, 균등, 안전’이라는 세계의 표어에 맞게 누구도 이 완전히 안정된 상태를 깨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청결 그 자체를 표방하며, 풍요로 가득 찬 소설 속의 세상(이하 ‘문명 세계’로 통칭한다.)은 독자의 시선으로는 삭막하게만 보인다. 그리고 문명 세계의 외부에서 온 야만인 존의 눈에도 과거 선망의 대상이었던 ‘멋진 신세계’는 금세 쾌락의 노예이자 자유의지를 잃은 타락한 괴물들로 가득 찬 지옥으로만 보이게 된다. 부족함과 고통 속에서 행복을 찾는 삶을 살아온 야만인이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문명 세계로 데려와 지면서 소설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소설이 현실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핵심구도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번만큼은 이 모든 것을 젖혀 두고 ‘버나드’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어 감정이입 해 보았다.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들은 앞에서 말했듯 완벽한 사회의 시스템 때문에 자신의 삶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단 세 사람만이 자신들이 속한 세계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을 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한 명은 알파 계급의 ‘버나드’, 다른 한 명은 그의 절친한 친구인 ‘헬름홀츠’, 그리고 외부에서 온 야만인 ‘존’이다. 헬름홀츠는 문명 세계 내 최상위 계급인 알파 계급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너무 뛰어나기에 세상의 시스템이 무언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내 의심하게 된다. 야만인 존은 완벽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열악한 외부 세계에서 자랐기 때문에 문명 세계의 문제점을 직감으로 알아채고 거부감을 드러내게 된다.
한편 ‘버나드’는 소설 내에서 가장 먼저 문명 세계의 현 시스템에 문제를 자각하고 반감을 품는 인물이다. 그는 알파 계급으로 사회 내 가장 상위 계급에 있으며 업무 능력 역시 뛰어나지만, 세상에 불만을 품고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주변 동료들은 그가 시험관에 있을 때 낮은 계급에 넣어야 할 약품을 그에게 잘못 투여했을 거란 의심을 하기까지 한다.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야만인 존과 문명 세계의 갈등에 집중하느라 ‘버나드’라는 인물은 그저 존을 문명 세계로 데려오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었고, 그저 비굴한 인격의 문명인정도로만 보였다. 그러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그에게 더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발견했고, 이 이야기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서의 면모를 발견했다.
그에게는 모두가 의심하지 않는 세상의 문제점을 알아차리는 비범함이 있었지만 신은 그 이외의 것을 그에게 주지 않았다. 그는 세상을 의심하는 자신의 가치관을 강하게 믿었고, 오히려 그 사실이 남들과 자신을 다르게 만드는 고유성이라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는 더더욱 세상에 의심을 품었고, 때로는 그것이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어 준다고 여겼다. 그를 묘사하는 몇몇 문장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버나드는 자신의 우월성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흔히 있는 날카로우면서도 좀 오만하며 심지어 모멸적인 말투로 명령했다.
경멸당하고 있다는 만성적인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친구를 피하게 했으며 아랫사람들 앞에서는 오히려 열등의식에서 오는 위엄을 부리게 만들었다.
버나드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것처럼 말했다. 자기연민이 갑자기 분수처럼 폭발했다.
“자네는 모를거야!”
‘불쌍한 버나드!’
헬름홀츠는 속으로 중얼 거렸다. 그러나 동시에 친구 때문에 창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버나드가 자존심을 좀 가져주었으면 싶었다.
열등의식으로 가득 찬 버나드의 행동은 그를 사회적 이단아로 만들었고, 이단아를 거부하는 문명 세계는 그의 퇴출을 결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문명인의 핏줄이면서 야만인들 사이에서 길러진 존을 발견하게 되어, 오히려 그의 사회적 지위가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버나드는 세상의 이단아에서 세간의 관심을 받는 스타가 되었고 거만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더 이상 세상에 불만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우월해진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문명 세계에 잘 흡수되어 버렸다. 그가 세상에 불만을 느낀다는 것은 더는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비범함의 확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세상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점을 더 당당하게 자신을 만나러 오는 사람들에게 설파했다. 많은 유명인이 버나드를 통해 존을 만나보려고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결국 존이 문명 세계를 거부하게 되면서, 버나드의 짧았던 ‘볕 들 날’은 끝이 나버렸다.
취소되었던 아이슬란드행 퇴출이 다시 확정되면서 그는 비굴한 인간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의 친구인 헬름홀츠와 존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부정하며 총통 앞에 무릎을 꿇고 절대 충성을 맹세하며 퇴출을 재고해 주기를 요청한다. 눈물 흘리며 이성을 잃은 그의 모습은 구질구질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 순진하기 그지없어 보였다.
그는 분명 세상의 문제점을 통찰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알파 계급 답게 자신의 업무 수행 능력 역시 뛰어났다. 그러나 그는 비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가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어느 하나도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버나드를 보면서 세간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참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결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사이에 숨겨진 문제점들을 알아차리고 자기 생각을 마구 늘어놓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세상의 진실을 알아챈 듯 행동하는 그들은 슬프게도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이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그 과정에서 단순히 자신의 가치관을 남에게 드러낼 뿐, 비범한 통찰력으로 세상을 문제점을 꿰뚫어 본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통찰 너머에는 뚜렷한 목적성이 아닌 그들의 감정만이 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기에 그들은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어 비판적인 사고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구축하는 과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존의 등장으로 사회적 지위가 급부상한 버나드가 그러했듯, 이들 중 대다수 역시 그들의 열등의식을 채워줄 무언가가 충만해지는 순간 그들의 비범함을 벗어 던지고 현실에 안주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목적이었기에. 남들과는 다르다는, 그저 비범함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비판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이 세상의 ‘버나드’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말 가슴 아프게도, 나는 어느새 나 자신을 버나드에 투영해서 소설을 읽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 역시 그와 다를 바가 없었다. 타인과 세상을 비판하고, 내 삶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반성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를 구축해오고 있었다.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헤매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주저했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버나드를 바라보는 헬름홀츠의 냉철한 시선에 괜스레 아팠다. 그러나 어느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 삶은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일 때마다 우리를 부정하므로, 한없이 떳떳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를 의심해 보곤 한다. 그래서 떳떳하려 발버둥 치는 이들이 그토록 사랑스러운 것이고. 그러니 나는 버나드가 보여주는 구차하고 추잡한 모습에도 그를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멋진 신세계는 기형적인 미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세상이 친숙하게 느껴진 것은, 소설 속 문명세계가 오늘날 맞이한 우리 세계의 단면과 닮아 있다는 그런 진부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지금 나와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닮은 비범한 듯 평범한 인물이 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헬름홀츠가 버나드를 묘사한 구절은 사뭇 무자비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아쉬운 모습들조차 먼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인간의 모습 중 하나라는 사실을 여지없이 느끼면서 글을 마친다.
그는 버나드를 좋아했다. 그는 자신이 중요하게 느끼고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친구가 버나드라는 이유로 버나드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버나드에게는 그가 싫어하는 점이 있었다. 예컨대 뽐내려는 태도가 그런것에 속했다. 게다가 그것과 교대로 나타나는 비참한 자기연민이었다. 또한 일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대담해지는 슬픈 습성과 사건의 현장을 벗어난 곳에 와서 비범한 침착성을 발휘하는 습성이 싫었다. 그는 버나드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러한 습성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