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좀 살만해지니, 나의 빛 바랜 꿈이 생각났다
남편이 Bar 시험을 고민하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나 역시 나의 새로운 도전을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걸까?"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보니 나는 그냥 '엄마'였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된 것처럼, 언제부턴가 '수지'는 사라지고 오직 '엄마'만 남아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레고르는 가족들이 충격을 받았지만 나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는 거였다.
오히려 모든 게 더 평화로웠고 자연스러워졌다.
새벽 7시, 엘리 런치박스에 샌드위치나 크런치볼, 딸기나 포도를 어떻게 예쁘게 놓을까 고민하고, 남편 도시락까지 예쁘게 싸다보면 8시 30분, DPNS 등원 후 2시간의 자유시간, 이라기보다는 코스트코부터 트죠까지 크레이지 장보기 레이스. 11시 45분, 터치다운해서 엘리 픽업하고 점심 먹이기. 오후 내내, 엘리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서 "엄마 봐, 엄마 봐!" 소리에 100번쯤 "우와 대단해!" 외치기. 도서관가서 책 읽기. 저녁 준비하기, 엘리 샤워시키기, 책 읽어주기, 한글 공부시키기, 재우기... 끝. 거기에 남편이 자전거를 못타는 날이면 운전기사처럼 라이드해주기도 있었다. 이게 내 일상의 전부였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정체는 곧 죽음'이라고 생각하며 달려온 인생이었으니까.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딸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그 결과 대학에 입학했고, 꽉 막힌 모범생은 대학에 와서도 복수전공한다고 학점도 꽉꽉 채워 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환율이 1500원을 향해 가던 그 암울한 해에도, 남들이 자유로운 미국생활을 만끽할 때도 아르바이트하며 용돈을 벌었고, 회사 다니면서도 대학원을 다녀서 기어코 석사학위까지 따냈다.
그런 내게 '멈춤'은 공포였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정신이 없었다.
30개월짜리 엘리와 함께 낯선 땅에서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전쟁이었으니까. 더 이상 그냥 학생도 아니었고, 이제는 정말 이제는 누군가를 책임져야 할 보호자였으니까.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니까, 잊고 있던 '나'라는 존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매일 새로운 법률 지식을 흡수하며 변호사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나만 홀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1평짜리 햄스터 쳇바퀴 위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데, 정작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당장 가정주부 역할을 팽개칠 수도 없었다. 내가 멈추면 우리 가족이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숨이 막혔다.
그나마 주 1회 Katy 할머니와 나누는 집밥 교류 시간만이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한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엘리 엄마도, 남편의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말이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어느 날 오후였다. 평소와 똑같이 엘리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문득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둔 꿈 하나가 스르르 떠올랐다.
'박사'
그렇다.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원래부터 무언가를 하나씩 더 배워가는 걸 좋아했던 내 본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교과서에 나오는 저명한 학자들을 보면서 '저렇게 토론하면서 하나씩 알아가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있었다.
물론 내 꿈은 여러 현실적인 이유로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낡은 거울처럼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희미하게나마 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기회의 땅 미국에 와 있었다.
그날 밤, 엘리를 재운 후 노트북을 켰다. UC Davis와 인근 대학들의 박사과정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설렘이었다.
미국 박사과정 지원 기본 정보
- 지원 시기: 보통 12월-1월 (가을학기 입학 기준)
- 필요 서류: 학부/석사 성적증명서, GRE 점수, 영어시험 점수, 추천서 3통, SOP(자기소개서)
학비: 주립대 기준 연간 $15,000-30,000 (캘리포니아 거주자(in-state)는 더 저렴)
펀딩: TA(조교), RA(연구조교), Fellowship 등으로 학비 및 생활비 지원 가능
기간: 보통 5-7년 (분야에 따라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