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데이비스의 살인적인 더위가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DPNS에서 돌아온 엘리가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적응해서 "Teacher Becky가 오늘 이거 가르쳐줬어! Rainbow는 무지개야!"라며 영어 단어를 섞어가며 재잘거렸다. 어제는 'sharing'이라는 단어를 배워와서 장난감을 나눠주며 연신 "Sharing! Sharing!"을 외쳤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인 아이의 말에서, 우리가 정말 미국에 살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며칠 전부터 DC Bar 웹사이트를 자주 들여다보던 남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계산하고 있었다. 노트에는 숫자들이 빼곡했다. 학비, 생활비, 보험료... 그리고 Bar exam 관련 비용까지. 계산기를 두드리던 남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마지막 줄에 큰 동그라미로 표시된 숫자, 매달 -500달러. 이미 빠듯한 살림에 Bar 준비까지 하면 그 적자는 더 늘어날 게 뻔했다. 게다가 California Bar는 볼 수 없다고 했었던가. DC Bar가 유일한 선택지였다. 캘리포니아 반대편에 위치한 워싱턴 DC. 항공료에 숙박비까지 추가로 들어갈 것이 뻔했다.
나는 엘리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이런 중요한 이야기는 아이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다. 엘리는 유난히 눈치가 빠른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면 금세 불안해하곤 했으니까.
밤 9시가 넘어서야 엘리가 곤히 잠들었다. 작은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나와 남편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창밖으로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들어오고, 그 사이로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편은 그전부터 내 눈치를 많이 봤으니까.
"Bar 시험 한번 봐! 나는 어차피 미국 오기 전부터 고생을 할 거라고 이미 다짐했고.. 놀러 오는 거 아닌 거 알고 왔으니까 마음의 준비는 다 되어있어. 눈치 보지 말고 힘껏 해봐."
"그런데 말이야..."
남편이 주저했다. 표정이 어두웠다.
"우리 상황 알잖아. 한국 집도 안 팔리고, 환율도 엉망이고. 지금도 빠듯한데 Bar 준비까지 하면... 당신하고 엘리한테 너무 미안해서."
나는 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고, 신중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힘든 건 사실이야. 코스트코에서 장 보고, 학교에서 나눠주는 무료 식료품도 받아가고, 그러면서 외식도 제대로 한 번 못하고. 하지만, 이왕 이렇게 힘든 거, 뭔가 더 얻고 가야 하지 않겠어?"
나는 말을 이어갔다.
"나도 알아. 합격률이 낮고, 특히 외국인은 더 어렵다는 것도. 그런데 당신 이미 가을학기에 Bar 과목들 들으면서 준비하고 있었잖아. 무엇보다 Bar 자격증이 있으면 선택지가 늘어날 거야.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남편은 묵묵하게 내 말을 듣는다.
"물론 쉽지 않을 거야. 당신은 공부하느라 힘들 거고, 나는 엘리 보면서 집안일 다 해야 하고. 여행은커녕 전쟁이지만... 뭐 어때 인생 한 번이고 아직 우린 젊잖아! 젊어서는 사서 고생도 한다는데 뭐~"
남편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로 고개를 숙이는 건, 남편답지 않은데. 항상 당당하던 남편의 왜소한 모습에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가 뭐 못한 게 있어? 결국 우리는 다 해내왔잖아. 기억나? 처음 미국 왔을 때 모텔에서 한 달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집 구했잖아. 엘리가 영어 한 마디 못해도 DPNS에서 적응할 수 있게 만들었잖아. 심지어 나파까지 한밤중에 운전해서 다녀온 나를 봐!"
말하다 보니 그동안 겪었던 고생들이 떠올랐다.
"그뿐이야?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싸서 울며 겨자 먹기로 신차 샀고, 세탁기 사건으로 3천 달러 날리고. 게다가 한국 집 전세계약 때문에 이향만리에서 소송까지 당했어. 그래도 우리는 이겨냈잖아."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약간의 여유를 두고 말을 이었다.
"나 이래 봬도 꽤 강해! 그리고 한 번에 합격한다는 강박 갖지 말고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준비해도 돼."
마지막 말에 남편이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정말 괜찮겠어? 더 힘들어질 텐데."
"솔직히? 안 힘들다면 거짓말이지. 하지만 우리가 언제 안 힘들었어? 중요한 건 이 고생이 의미 있는 고생이라는 거야.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거지. 나는 지금 당신한테 투자하는 거야! 하하"
"..."
"그리고 하나 더. 나중에 엘리가 크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아빠가 너 키우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미국 변호사 시험에 도전했다'라고. 그게 얼마나 멋진 일이야?"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들렸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한 번에 합격해 볼게."
남편이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출사표를 던졌다.
"자기가 이렇게까지 말해주는데, 내가 어떻게 포기하겠어. 나, 죽을 각오로 진짜 열심히 할게. 꼭 붙어볼게."
그날 밤, 우리는 DC Bar exam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당장의 행복을 조금 미뤄두고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필요한 선택이었다.
며칠 후, 남편은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DC Bar 웹사이트를 뒤지며 정보를 수집했다. 시험 구조, 과목, 일정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다.
"이거 봐. 시험이 이틀 동안 진행돼."
남편이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첫째 날은 MPT라고 실무문서 작성 2문제를 오전에 풀고, 오후에는 MEE라고 논술형 6문제를 풀어야 한대. 둘째 날은 MBE, 객관식 200문제를 오전 오후 나눠서 풀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MBE?"
"7개 과목에서 객관식 문제를 내나 봐. Contracts(계약법), Torts(불법행위법), Criminal Law and Procedure(형법 및 형사소송법), Constitutional Law(헌법), Evidence(증거법), Real Property(부동산법), Civil Procedure(민사소송법)..."
듣기만 해도 아찔했다. 영어로 법률 논술을 해야 하고, 하루에 200문제나 되는 객관식을 풀어야 한다니.
"JD들은 3년에 걸쳐서 배우는 걸 나는 1년 만에 해야 해. 그것도 영어로."
"할 수 있어. 우리가 뭘 못해봤어?"
내가 격려하자 남편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MPRE라고 법조윤리 시험도 따로 있어. 3월에 볼 예정이야."
"하나씩 차근차근하자. 일단 내년 봄학기에 어떤 과목을 신청해야 하는지부터."
그렇게 우리 가족의 DC Bar exam 도전이 시작됐다. 짧지만 긴 여정.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해 도전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니까.
밖에서는 가을바람이 불었다. 차가운 바람이었지만, 우리 가슴속에는 뜨거운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다.
"자기야."
남편이 나를 불렀다.
"이 도전이 끝나면,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을 거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맞아. 그리고 엘리도 그런 부모를 보며 자랄 거고."
앞으로 10개월, 아니 그보다 더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확신했다. 우리가 함께라면, 그 어떤 도전도 이겨낼 수 있다고.
우리라면 할 수 있다. 꼭 해낼 것이다.
We will find a way. We always have.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수많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가족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