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페이지와의 우정, 그리고 균열의 시작

왜 우리를 호구로 보는걸까

by 유지니안

DPNS 5일반 합격 소식에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던가. 그게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은 몰랐다. 바로 엘리와 페이지, 그리고 나와 제시의 이야기다.




페이지. 이 이름은 아마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데이비스에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고, 엘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친구였으니까.

페이지의 엄마 제시는 원래 샌디에고 출신인데, 남편 가족이 데이비스에 살고 있어서 이사 왔다고 했다. 실제로 시누이와 시어머니가 걸어서 5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정말 화목한 가정이었다. 부부에 아들, 딸, 그리고 페퍼라는 달마시안 강아지까지. 전형적인 미국의 행복한 가족 사진 그 자체였다.

'공동육아로 아주 꿀 빨고 있는 거 아닌가?'

한편으로는 새삼 부러웠다. 시댁 식구들이 가까이 있어서 아이를 맡길 수도 있고, 급할 때 도움도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번은 제시가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제시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사실 남편이랑 요즘 사이가 안 좋아. 주말에도 계속 게임만 해. 아이들이 아빠랑 놀고 싶어 하는데.. 특히 코로나 이후로 더욱 사이가 안좋아졌어."

아, 그래서 항상 제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었구나. 처음엔 애론이 바빠서 그런 줄 알았는데.

역시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맞는 것 같았다. SNS에 올라온 그들의 가족사진은 언제나 행복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고민과 갈등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제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친근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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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지 몇 주 만에 서로의 집을 오가는 사이가 되었고, 3월에는 드디어 제시네 집에 정식으로 초대받았다. 놀이터나 뒷마당(backyard)이 아닌, 정말로 집 안으로 초대받은 것이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서 들고 갔다. 미국 친구들에게 진짜 한국의 맛을 선보이고 싶었다. 제시는 퀴시(Quiche)라는 프랑스 요리와 스무디를 만들어주었는데, 처음 먹어본 맛이었지만 인상적이었다. '아, 외국인들이 한식을 처음 먹을 때 이런 느낌일까?'

다행히 제시 남편도 떡볶이를 꽤나 좋아했다. 매콤달콤한 맛에 계속 손이 간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식이 정말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제시는 DPNS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고, 덕분에 나도 용기를 내어 Open House에 참석할 수 있었다. 페이지가 다니는 학교에 엘리도 함께 다닐 수 있다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예고 없이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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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제시가 물어왔다.

"혹시 페이지를 DPNS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올 수 있을까? 돈은 당연히 줄게. 베이비시팅 비용으로."

순간 나는 벙쪘다.

'이게 뭔가... 이게 맞는 건가? 미국식이 이런 건가?'

"왜? 내가 돈도 줄 거고, 우리 가까이 사니까 엘리 픽업하면서 페이지만 같이 하면 되지 않아? 첫째 학교 때문에 네 도움이 정말 필요해."

너무나도 당연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태도에 많이 놀랐다. 친구 사이에서 이런 요청이 자연스러운 건가? 내가 한국적 사고에 갇혀있는 건가?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미국에서 처음 사귄 친구라 최대한 배려하려고 노력했었다. 제시가 "잠깐 화장실 좀"이라고 하면 당연히 페이지를 봐줬고, "커피 한잔 사올게"라고 하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기다렸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눈치껏' 도와준 거였는데, 어느새 그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 내가 경계를 제대로 안 세웠구나.'

미국 생활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여기서는 Yes와 No를 분명히 해야 한다. 애매하게 도와주다 보면 그게 의무가 되어버린다. 특히 돈이 오가는 관계가 되면 더 복잡해진다. 더군다나 나는 아시아인 그리고 제시는 백인이였다.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내가 거절하자 제시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거절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도 제시는 계속해서 같은 부탁을 했고, 나는 계속 거절했다. 점점 우리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안전이별'을 택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돈'을 주고 '나의 시간과 노력'을 사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싶었다. 이건... 마치 유모나 시터를 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동안의 시간들은 인터뷰였던건가..? 그리고 아마 어쩌면 나의 억하심정, 특히 인종차별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들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때는 서서히 fade away하는 것이 서로에게 덜 상처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의 처음으로 사귄 미국 친구와의 우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DPNS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미국에서는 carpool(카풀)이 매우 일반적이다. 특히 학교 등하교 시간에는 부모들끼리 돌아가며 아이들을 픽업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간과 연료를 절약하는 실용적인 방법이지만, 다음과 같은 책임이 따른다.
- 보험: 타인의 자녀를 태울 경우 추가 책임보험이 필요할 수 있음
- 카시트: 각 아이의 연령에 맞는 카시트 준비 필수
- 일정 조율: 정확한 픽업 시간 준수와 비상시 대체 계획 필요
- 신뢰 관계: 서로의 운전 실력과 안전의식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함
특히 유료 베이비시팅 형태의 carpool은 더욱 복잡해진다. 세금 신고, 계약서 작성 등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