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DPNS에서 시작하는 첫 가을

엄마와 떨어지는 것은 어려워

by 유지니안

8월 말, 기다리던 이메일이 도착했다.

"Congratulations!".

그렇다. 다행히 엘리가 DPNS 5일반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Mini Summer Camp에서 보여준 엘리의 모습을 높이 평가한 Teacher Trudi의 추천이 통한 듯 했다. 친하게 지내는 페이지랑 같이 다니게 된 것도 너무 다행이었다.

남편과 함께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밀려왔다. 정말 엘리가 엄마 없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어린이집에 금방 적응했지만, 미국에 와서부터는 엘리가 분리불안을 겪었던 게 마음에 걸렸다.


9월 첫째 주 월요일. 드디어 정규 과정의 첫날이었다. 아침부터 엘리에게 이쁜 드레스 옷도 입히고, 머리에는 핀도 꽂았다. 아이들은 쉽게 배고파하기 때문에, Snack time에 먹을 수 있도록 lunch box도 싸줘야 했다. 첫 lunch box에는 엘리가 좋아하는 치즈랑 포도, 그리고 granola bites를 넣어주었다.


이제 엘리를 챙겨서 출발할 시간. 첫 날이니까 조금 일찍 출발해야 했다. 엘리는 이쁘게 꾸민 모습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DPNS 5일반에 가는 걸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엘리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엄마가 함께 있었던 mini summer camp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엘리야, 오늘부터 매일 학교 가는 거야. 페이지도 있어!"

"페이지? 좋아!"

"엄마 대신 선생님이 엘리를 돌봐주실거야. 엘리 잘할 수 있지?"

"나는 엄마랑 놀꺼야. 엄마랑 같이!"


8th Street에 있는 DPNS 캠퍼스. 정문 앞에서 엘리가 갑자기 내 다리를 꽉 붙잡았다. 문 앞에 서서 보고 있던 Teacher Becky가 환한 미소로 다가왔다. 여름의 Teacher Trudi와는 또 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좀 더 단호한 느낌이랄까.

"Welcome, Ellie! Come on in!"

하지만 엘리는 내 뒤로 숨기만 했다. 결국 Becky가 엘리를 부드럽게 안아 들고 교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엘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가지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다른 부모들은 익숙한 듯 빠르게 떠났는데, 나만 바보처럼 서 있었다.

'그냥 들어가 있을까?'

하지만 처음 적응할 때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엘리가 적응하는데 더 어려울 것이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했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 지 모르니, 갓길에 세워 둔 차 안에서 기다렸다.

걱정과 초조, 불안이 함께한 2시간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어서 아이들이 놀이터(Yard라고 불렀다)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미리 와 있던 학부모들이 하나둘 학교 안으로 들어가, 놀이터 앞 공터에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나도 얼른 차에서 내려 학교로 향했다.

놀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한 금발의 엄마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보네요. OOOO이에요. OOO 엄마구요. 첫날이신가요?"

"안녕하세요. 오늘 처음 왔어요. 저는 Susie, 그리고 저희 애 이름은 Ellie에요. 3살이구요."

"아, 그래서 차에서 기다리고 계셨군요. 저도 작년에 그랬어요. 우리 애도 처음엔 정말 많이 울었거든요."

그녀의 이해 어린 눈빛이 위로가 됐다. 우리 엘리만 이런 게 아니구나.

"그랬군요... 우리 엘리도 잘 적응할 지 모르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요. 아마 금방 적응할 거에요. 어떤 아이는 일주일 만에 적응하기도 하고요."

"그렇겠죠? 그나저나 여기 너무 좋은 것 같아요. yard도 넓고요. 다른 어린이집들은 yard가 너무 작아서 숨막히더라구요."

뻘쭘하게 혼자 서 있는 동양인 여자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을까.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준 덕분에 우리는 금새 스몰토크를 나눴고, 덕분에 마음을 다소 안정시킬 수 있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만 5살 정도 되어보이는 큰 애들이 먼저 힘차게 뛰어나왔다. 뒤이어 작은 애들도 자신의 lunch box를 들고 졸래졸래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엘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Becky와 엘리가 함께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의 눈가는 빨갛게 부어있었고, 울었던 흔적이 역력했다.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Teacher Becky가 엘리를 보면서 이야기했다.

"2시간 내내 제 무릎에 앉아있었어요. 계속 엄마를 찾더군요. 그런데 원래 다들 그래요. 이게 보통이죠. 항상 함께하던 엄마와 2시간 동안 떨어져서 있었다는 그 자체가 아이에게는 굉장히 스트레스였을 거에요. 집에서 엘리에게 칭찬 많이 해주세요. 그래야 엘리도 더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거에요."

나를 보자 엘리가 와락 안겼다. 작은 몸이 떨리고 있었다.

"엄마, 나 엄마 찾았어. 엄마 어디 갔어?"

"엘리야, 미안해. 엄마가 잠깐 밖에 있었어. 우리 엘리 정말 잘했네. 학교에서 2시간이나 있었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엘리는 평소처럼 이야기하거나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 마음도 무거웠다. 아이에게 너무 큰 걸 요구한 건 아닐까?


저녁,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하루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2시간 내내 울었대. Teacher Becky 무릎에만 앉아있었다고..."

"첫날이니까 그럴 수 있지. 내일은 좀 나아질 거야."

남편의 위로가 고맙긴 했지만, 과연 그럴까? 아침 문 앞에서 엘리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화요일 아침, 어제와 같은 일이 반복됐다. 엘리는 눈을 뜨자마자 "학교 안 가"를 외쳤다. 어제의 기억이 선명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옷을 입히고 아침을 먹인 후 차에 태웠다. 이번에도 Teacher Becky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Good morning, Ellie! 오늘은 playdough로 놀 거야. 재밌겠지?"

하지만 엘리의 눈가는 벌써부터 벌게지기 시작했다. Teacher Becky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빠른 이별이 더 나아요. 엘리야, 엄마는 나중에 올 거야. 우리 재밌게 놀자!"

Teacher Becky가 단호하게 엘리를 안아 들고 들어갔다. 어제보다 더 크게 우는 엘리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가슴이 미어졌지만, 이것도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수요일도 화요일과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가기 싫어하는 엘리를 달래서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는 시계만 들여다보며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날 데리러 갔을 때, Teacher Becky가 작은 희망의 불씨를 던져주었다.

"오늘 엘리가 처음으로 Circle time에 앉아있었어요. 참여는 안 했지만, 적어도 도망가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Wheels on the Bus' 노래가 나올 때 입을 살짝 벙긋거더라고요. 마치 따라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우리 엘리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엘리야, 오늘 학교에서 뭐했어?"

"...노래."

"무슨 노래?"

엘리는 고개를 저었지만, 작은 목소리로 'Wheels on the Bus' 노래를 허밍했다.




내일은 목요일, 나의 첫 Duty Day였다. 3일 동안 엘리가 어떻게 지냈는지 직접 볼 수 있는 기회.

밤에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엘리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영어로 이야기하는 게 어려워서일 수도 있었다. 엘리가 결국에는 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과연 Teacher Becky는 언제까지 참아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적응의 시기가 길면 길어질수록 엘리가 DPNS 3일반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다.

창밖으로 데이비스의 별이 반짝였다.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 엘리에게도,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이 낯선 땅에서 우리만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서.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너무 조급했던 것 같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속도가 있는데, 자꾸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불안해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쩔 수 없었다. 낯선 땅에서, 낯선 언어로, 우리는 모두 처음부터 다시 배워가고 있었으니까.


KakaoTalk_20250710_170538519.jpg Duty Day 전체 스케쥴. 뭔가 할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