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D 피크닉데이에서 처음 마주한 남편의 공간
4월의 데이비스는 어디를 가나 초록빛이었다. 마치 누군가 페인트통을 엎어놓은 것처럼, 캠퍼스 곳곳에서 새싹들이 미친듯이 올라왔다. 특히 잔디밭 사이로 죽순처럼 삐죽삐죽 올라온 연둣빛 풀들이 봄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엄마, 놀이터 가자!"
엘리는 아침부터 놀이터 타령이었다. 물가가 너무 올라 주말마다 어디 제대로 놀러가지도 못하던 시절, 우리의 유일한 낙은 집 앞 놀이터였다. 그런데 마침 남편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번주 토요일에 우리 학교에서 피크닉데이 한대. 가볼래?"
"피크닉데이가 뭐야?"
"UC 데이비스에서 매년 4월에 하는 큰 행사야. 캠퍼스 전체가 축제 분위기라던데."
사실 나는 남편이 다니는 학교가 너무 궁금했다.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오는 남편. 도대체 어떤 곳에서 공부하고 있을까? 특히 로스쿨 건물이라는 King Hall은 어떤 모습일까?
UC 데이비스 피크닉데이(Picnic Day)
1909년부터 시작된 UC 데이비스의 연례 오픈 캠퍼스 행사. 매년 4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며,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학생 주도 행사 중 하나다. 200개가 넘는 전시, 시연, 공연 등이 캠퍼스 전역에서 펼쳐지며,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연구실이나 시설도 일반에 공개된다. 매년 7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 데이비스의 대표적인 봄 축제.
토요일 아침, 우리는 부푼 기대를 안고 캠퍼스로 향했다. 평소 한적한 데이비스가 이렇게 붐빌 수 있다니. 주차장부터 사람들로 가득했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유모차를 끌고 캠퍼스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가 아빠 학교야!"
엘리에게 자랑스럽게 캠퍼스를 보여주는 남편. 그 모습이 왠지 귀여웠다.
첫 번째 목적지는 당연히 King Hall. 남편이 하루 종일 씨름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너무 궁금했다.
"여기가 우리 강의실이야."
계단식으로 된 강의실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하버드나 콜럼비아 같은 유명 로스쿨의 웅장한 강의실을 상상했던 나에게는 의외였다. UC 데이비스 로스쿨은 학생 수가 적어서 그런지, 오히려 교수와 학생 간 거리가 가까워 보였다.
"도서관도 구경할래?"
1층에 위치한 로스쿨 도서관 역시 아담했다. 너무 아담해서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어떻게 다 공부하나 싶을 정도로.
"윗층에 학생들 개인 좌석이 있긴 해. 자리가 좁아서 그런지 2인이 1좌석을 사용해야 하지만..."
"오, 그러면 당신은 어디서 공부해?"
"음.. 한 번 가볼까?"
2층으로 올라가니 과연 우리나라 독서실과 똑같이 꾸며놓은 개인 좌석들이 보였다. 그런데 남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옛날 책들이 모여있는 서고로 이동하는게 아닌가. 그러고도 2개 층을 더 올라가고, 거기서 또 한참을 들어가서야 남편의 이름이 작게 쓰여진 자리가 나왔다.
"뭐야, 이것도 개인 좌석이야? 너무 심하잖아..."
"LLM 학생들은 다 이런 자리로 배정되어 있어. 아까 2층에서 봤던 독서실은 JD 애들이 쓰더라고. 그래도 옆에 창문도 있고, 쓸만해."
남편은 쿨하게 넘겼지만, 나는 왠지 짠했다. JD는 좋은 자리 주고 LLM은 구석에 박아두다니, 이건 좀 차별 아닌가? 그나마도 먼지가 쌓인 듯한 허름한 자리라니. 안 그래도 기관지가 약한 남편인데, 저런 곳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면 건강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다.
King Hall을 나와 메인 이벤트가 열리는 Memorial Union 쪽으로 향했다. King Hall은 학교 내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없었지만, Memorial Union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저 멀리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드디어 다다른 중앙 잔디광장, The Quad. 이미 수많은 부스와 푸드트럭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잔디밭에는 돗자리를 가지고 와서 앉아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코로나로 답답했던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 다 나온 것 같았다.
점심은 푸드트럭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다양한 음식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나마 익숙해 보이는 베트남 쌀국수를 선택했다.
"맛있어?"
"음... 그냥 그래."
솔직히 별로였다. 면은 퍼졌고 국물은 밍밍했다. 그래도 축제 분위기에 취해 꾸역꾸역 먹었다. 가격은 물론 비쌌다. 한 그릇에 12달러. '차라리 집에서 컵라면 먹을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엘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캠퍼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부스를 구경했다. 과학 실험을 보여주는 부스, 동물들을 만날 수 있는 부스, 학생들이 만든 로봇을 시연하는 부스... 다양한 볼거리가 있었지만, 솔직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즐기기는 어려웠다.
"내년엔 안 와도 될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말했다.
"그래? 나도 사실 사람 너무 많아서 정신없었어."
"우리 완전 시골 사람 다 됐나 봐. 한국에 있을 때는 지옥철도 타고 다녔으면서, 이제는 사람 조금만 많아도 답답하네."
정말이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인파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았던 우리가, 이제는 조금만 붐벼도 불편해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데이비스의 한적함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래도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 적어도 남편이 매일 다니는 학교를 구경했고, 우리는 오랜만에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무엇보다 돈을 많이 쓰지 않고도(푸드트럭 제외)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었다.
"아빠 학교 재밌었어?"
집에 돌아와 엘리에게 물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 또 가자!"
'음... 다음은 좀 생각해볼게.' 속으로만 대답하고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그날 밤, 잠든 엘리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정말 변했구나. 번잡한 것보다 조용한 것을, 화려한 것보다 소박한 것을 좋아하게 된 우리. 어쩌면 이게 데이비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일지도 모른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는 법. 비록 로스쿨 도서관 구석자리가 서럽고, 푸드트럭 쌀국수가 맛없어도,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