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엄마에게 건넨 한 미국인의 위로
제시와 페이지의 그림자가 우리 삶에서 완전히 걷힌 10월의 어느 날, 나는 문득 공허했다. 유일한 미국인 친구라 믿었던 이들과의 끝이 이토록 허무할 줄이야. 데이비스의 가을은 깊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서툰 걸음으로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를 붙잡아준 인연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가장 먼저 생각난 이름은, 릭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직 찬 바람이 불던 그해 3월이었다...
제시로부터 DPNS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어느 봄날이었다. 엘리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정처없이 West Manor Park 주위를 돌아다니곤 했다. Co-op이라는 낯선 시스템도 부담스러웠고, 영어도 서툰 우리가 그 끈끈한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때 검은 푸들을 데리고 산책하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큰 키에 대머리, 한 손에는 라디오를 들고 있는 모습이 영화에서나 볼 법한 전형적인 미국 할아버지였다. 약간 험상궂어 보이기도 해서 내심 긴장했다.
푸들이 엘리에게 다가오자 겁먹은 엘리가 내 다리 뒤로 숨었다.
"Don't worry, Charlie is very friendly!"
노인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가 의외로 따뜻해서 나도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고, 남편이 UC Davis에서 법학을 공부한다고 소개하자 그의 눈이 반짝였다. 알고 보니 그도 UC Davis 법대 출신 변호사였다.
이름은 릭. 하지만 변호사 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초등학교 교사로 전직했고, 지금은 은퇴 후 우드랜드 소년원에서 교정위원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했다. 변호사에서 교사라니. 내 놀란 표정을 보며 릭이 웃었다. 인생은 너무 짧아서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 수 없다고, 가르치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었다고.
어느새 엘리가 조심스럽게 찰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찰리는 갑자기 다가오는 엘리가 신기한지 더 적극적으로 코를 들이대었다. 처음에는 저돌적인 찰리가 무서운지 내 뒤로 숨기만 하던 엘리는 어느새 찰리와 친해졌는지 곱슬거리는 개털을 만져대며 뛰어놀고 있었다.
그 사이, 릭이 엘리를 바라보며 물었다.
"엘리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 같은데, 적응에 문제는 없나요?"
그 질문에 그간의 고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사실 걱정이 많아요. 영어를 못해서 친구를 못 사귀고, 하루 종일 TV만 보고... DPNS라는 프리스쿨에 보내려고 하는데, 거기는 부모들이 직접 참여하는 Co-op 시스템이라서... 영어도 못하는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했던 릭은 차분히 들어주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언어는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와요.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벌써 세 살인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워요.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말고 환경에 노출시키면 스펀지처럼 흡수할 거예요. 보세요, 지금 엘리가 찰리와 노는 모습을. 말은 안 통해도 벌써 친구가 됐잖아요."
릭의 말에 엘리를 바라보니 정말 그랬다. 찰리와 함께 뛰어다니며 깔깔거리고 있었다.
"DPNS는 아주 좋은 선택이에요. 부모가 직접 참여하는 시스템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그만큼 아이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죠. 그리고 데이비스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예요. 외국인이라고 주눅들 필요 없어요."
"정말요? 저희가 영어를 잘 못해도 괜찮을까요?"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진심으로 참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돼요. 다들 이해해줄 거예요."
그날 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 오후에 공원에서 만났다. DPNS를 마친 엘리와 내가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낼 때면, 비슷한 시간에 산책을 나오는 릭과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30분씩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은 나에게 문화 수업이자 육아 상담 시간이었다.
릭은 특히 내 조급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책 읽기를 숙제로 만들지 말라고, 책을 읽으면 TV를 보여주는 식의 보상은 책을 단순한 수단으로 만든다고. 이 나이에는 놀이가 곧 학습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엘리가 영어를 못하면 어쩌나, 한국 돌아가면 또래들은 벌써 한글 떼고 있을 텐데...'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몰아붙였다면 얼마나 불행했을지.
어느 날 릭이 작은 봉투를 건넸다. 엘리를 위한 그림책들이었다. 이 나이에 읽기 좋은 책들이라며, 함께 읽되 억지로 읽히려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낯선 땅에서 만난 그의 따뜻한 배려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You're doing great,"
릭이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Just take it one day at a time."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엘리가 받은 책들을 꼭 껴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찾고 있던 건 완벽한 영어도, 끈끈한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주는 누군가, 서툴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시선이었다. 릭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방인이라는 꼬리표가 무거웠던 우리에게, 그건 단지 '다름'일 뿐이라고 가르쳐준 사람.
그날 밤, 엘리와 함께 릭이 준 책을 펼쳤다. 아직 영어를 더듬거리는 엘리지만, 그림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모습이 신기했다. 찰리와 놀던 이야기, 릭 할아버지가 웃던 이야기까지 보태며. 그래, 릭의 말대로 아이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배워간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조급함을 내려놓고, 이 낯선 땅에서 나만의 속도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창밖으로 West Manor Park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엘리가 품에 안긴 채 잠들었다.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표지를 보니 'The Very Hungry Caterpillar'였다. 배고픈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문득 우리도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툴고 느리지만, 언젠가는 날개를 펼 그날을 위해.
One day at a time.
Don't push yourself too much.
릭의 말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렸다.
한국과 미국의 교육관 차이: 정답 사회 vs 과정 사회
많은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또래보다 뒤처지는 것을 불안해한다. "옆집 아이는 벌써 한글을 뗐대" 같은 말이 일상적이고, 24개월부터 한글, 36개월부터 영어를 시작하는 것이 '정답'처럼 여겨진다. 학습지와 학원이 중심이 되는 구조화된 교육이 보편적이다.
반면, 미국(특히 캘리포니아)의 유아교육은 'Play-based learning'을 가장 중요한 학습 활동으로 본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사회성, 창의성, 문제해결 능력을 스스로 터득한다고 믿는다. "Let kids be kids"라는 말처럼, 아이 개개인의 발달 속도를 존중하며 "It's okay"와 "Good job"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다.
물론 이 역시 지역이나 학교, 가정환경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경험한 데이비스에서는, 아이가 '정답'을 찾아가는 것보다 자신만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다만 엘리가 데이비스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 아이만의 특별한 과정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