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극I 엄마와 극E 딸이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

어떻게 하면 play date에 성공할 수 있을까

by 유지니안

"엄마, 저기 친구들이야! 같이 놀자!"

West Manor Park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엘리가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간다. 저쪽에선 엄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도 자연스럽게 가서 끼어볼까?' 멈칫거리는 내 발걸음, 떨리는 동공, 결국 돌아서서 여느 때처럼 가장 구석진 벤치를 찾아 앉는다.


학창시절 12년 줄반장을 했다. 하지만 그건 선생님이 시켜서였을 뿐. 대학 가자마자 철저한 아싸가 된 게 진짜 내 모습이다. 그런 내게 극E 딸 엘리가 태어났고, 미국은 새로운 퀘스트를 던졌다.

'딸을 위한 플레이데이트를 성공시켜라!'




"Your daughter is so bubbly!"

놀이터에서, 도서관에서, 마트에서. 어디를 가나 듣는 말이다. 엘리는 처음 보는 아이에게도 "Hi! I'm Ellie!"하며 다가간다. 반면 나는? 상대 엄마가 말을 걸어오려는 기색이 보이면 아직 대화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피곤해진다.

하루라도 집에만 있으면 소파에서 점프하고, 식탁 위로 올라가는 엘리. 매일 아침 7시면 시작되는 "엄마, 친구! 나가자!" 공세.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엘리에게 이끌려 밖을 나선다.

KakaoTalk_20250720_192129239.jpg 아침 8시에 이미 나와서 놀고 있는 딸


처음엔 막막했다. 플레이데이트가 뭔지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국에서도 친구를 굳이 사귀려고 하지 않았던 나다. 그렇지만 미국 엄마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Come over this weekend!"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 한마디가 목구멍에서 나오질 않았다.

DPNS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졌다. 공동육아 시스템상 부모들끼리 친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 보조교사 당번인 날이면 아침부터 속이 쓰렸다.


"Good morning, everyone!"

보조교사 당번인 날이면 아침 인사로 시작한다. 아이들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없었다. 문제는 부모들과의 가십성 스몰토크였다.

"Did you hear about the new San Francisco Distirct Attorney? She is absolutely terrible!"

"I can't believe what happened at the election!"

커뮤니티의 소소한 뉴스나 이웃집 이야기들, 나아가 검사장 선거와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까지. 뭐라고 끼어들어야 할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막막했다.


그렇게 DPNS에서 3개월째. 극I라서 먼저 대화를 걸진 못했지만, 성실하게 임했다. 남들이 귀찮아하는 화장실 청소, 장난감 소독, 스낵 준비 같은 일들을 묵묵히 했다. Fall Festival, Pumpkin Patch 등 모든 행사에도 빠짐없이 참가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같은 duty parents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 날씨, 아이들 이야기, 학교 일정 같은 것들. 하지만 여전히 '엄마들끼리의 플레이데이트'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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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같이 당번을 서던 Katy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70대 할머니인데 외손자인 Wolf를 DPNS에 보내고 있었다. 청소하며 나눈 짧은 대화에서 그녀가 요리를 곧잘 한다는 걸 알게 됐다.

"I love cooking. Especially traditional American dishes."

순간, 용기를 냈다.

"Me too! I usually cook Korean food in these days!"

Katy 할머니의 눈이 반짝였다. 갑자기 우리는 음식 얘기에 빠져들었다. 김치 만드는 법, 파이 굽는 법, 된장찌개와 클램 차우더의 차이점...

"We should cook together sometime! I'll teach you how to bake, and could you teach me kimchi?"

'어? 이게 플레이데이트 시작인가?'

본능적으로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 나는 배우고 싶은 음식 목록을 적어갔다. 그냥 말로만 끝나면 안 될 것 같아서.

"Oh, good! I love it. Let's start this Friday?"


첫 요리 플레이데이트는 금요일 오전 9시 30분, Katy 할머니 집에서 시작됐다.

전날 밤부터 긴장됐다. 극I의 걱정은 끝이 없었다. 엘리는 신나서 "Katy 할머니 집! 친구랑 놀아!"를 외쳤지만. 아이들이 없을 때 제대로 된 쿠킹 클래스가 될 것 같았다. Katy 할머니 집은 데이비스 동쪽에 위치한 아담한 단독주택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Katy 할머니가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Come in! I'm cooking a beef stew and baking a cake today. My grandmother's recipe!"

부엌은 정갈했고, 고기, 양파, 각종 향신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먼저 시작한 건 아몬드 케이크 만들기. 케이크 반죽하는 법, 양념 비율, 오븐 온도까지. Katy 할머니의 인도 아래, 손으로 직접 반죽을 만지며 느낌을 익혔다. 어느새 긴장이 풀리고 있었다. 실수해도 웃으며 넘어가는 이 시간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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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만든 건 비프스튜. 재료 손질부터 시작해서 양념 만들기까지 Katy 할머니는 차근차근 가르쳐줬다. 오븐에 비프스튜를 넣고 차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Katy 할머니가 물었다.

"So, what Korean dish will you teach me?"

"Kimchi, if you want to."

"Oh yes! I've always wanted to know how to make it properly."

그렇게 다음 주 우리 집에서의 김치 만들기가 정해졌다.


다음 주 금요일, 우리 집에서 김치 담그기. Katy 할머니가 정확히 9시 30분에 도착했다.

김치 담그는 과정을 설명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소금에 절인다"를 어떻게 설명하지? "김치 양념"은 또 뭐라고 하지? 하지만 Katy 할머니는 진지하게 들으며 메모까지 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요리 교환은 정기 모임이 됐다. 애플파이와 불고기, 치킨 누들 수프와 된장찌개... 둘만의 조용한 요리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내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Katy 할머니와의 편안한 대화 덕분일까? DPNS에서 다른 엄마들과 마주쳐도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됐다.

"How's Ellie doing?" "Did you try the new coffee shop?"

짧은 대화지만, 이제는 "Good! She loves art time" "Not yet, is it good?" 정도는 대답할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Natasha라는 엄마가 다가왔다.

"We're having a small playdate this Saturday. Would you and Ellie like to come?"

예전 같았으면 바로 거절했을 텐데, Katy 할머니와의 경험이 용기를 줬다.

"Thank you... we'd love to come."

그렇게 다른 가족들과의 플레이데이트도 시작됐다. 여전히 긴장되지만, 이제는 그 불편함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여전히 나는 극I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부담스럽고, 파티 초대를 받으면 가기 싫은 마음이 먼저 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불편함 너머에 따뜻한 연결이 있다는 걸. 그리고 Katy 할머니와의 요리 데이트가 준 자신감으로, 이제는 가끔 다른 엄마들의 초대가 설렌다.


DPNS에서의 경험들, 그리고 Katy 할머니와의 만남은 내게 작은 혁명이었다. 허드렛일을 묵묵히 하던 극I 엄마가, 이제는 다른 엄마들의 초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엄마, Katy 할머니가 보낸 거야?"

한국으로 돌아온 지 6개월. 택배가 도착했다. Katy 할머니가 보낸 엘리의 생일선물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선물들과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For my little sous chef Ellie. Hope you're still helping mom with Korean cooking! Love, Grandma Katy"

눈물이 났다. 70대 미국 할머니와 30대 한국 엄마. 영어도 서툴고 극I인 나와, 요리라는 공통분모로 만난 인연. 그것이 진짜 플레이데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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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여전히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어?"라고 묻는다. 나도 모르겠다. 그저 엘리를 위해서,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기에.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가능했는지도.


극I 엄마와 극E 딸의 미국 살이. 737일의 시간 동안 나는 조금 성장했다. 놀이터 구석 벤치에서 가운데 벤치로, 그리고 가끔은 다른 엄마들이 앉은 벤치 옆에 앉기도 한다. Katy 할머니 덕분에 이제는 오히려 우리 집에 엘리 친구들과 엄마들을 초대하기도 한다. 여전히 떨리지만.


"엄마, 나도 Katy 할머니한테 편지 쓸래!"

엘리가 크레용을 꺼낸다. 서툰 한글과 영어가 섞인 편지. 그림으로 가득한 편지.

이 모든 과정을 글로 쓰는 것도 극I에게는 큰 도전이다. 하지만 언젠가 엘리가 이 글을 읽고 알아주길. 엄마도 너를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는 걸.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Katy 할머니 같은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따뜻하게 품어줬는지를.


플레이데이트의 성공은 완벽한 영어도, 세련된 매너도 아니었다. 그저 진심으로 다가가는 용기, 그리고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여는 시간이었다.


오늘도 Katy 할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Made kimchi today. It's getting better! Miss you all."

나도 답장을 보낸다. 서툴지만 진심을 담아서.


극I 부모의 플레이데이트 성공 팁

시작은 작게
- 공통 관심사 찾기 (요리, 육아, 취미 등)
- 허드렛일도 성실히 → 신뢰 쌓기
- 3개월은 기다려주기 (급하면 안 됨)

첫 만남 준비
- 배우고 싶은 것 목록 만들기 (구체적일수록 좋음)
- 상대방이 가르쳐줄 때 메모하기 (진지함 표현)
- 실수해도 웃어넘기기

관계 이어가기
- 정기적인 만남 제안 (부담 없는 주기로)
- 아이들도 함께 포함시키기
- 작은 선물이나 카드로 마음 표현

극I's 마인드셋
-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 불편함 너머의 따뜻함 기억하기
-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라면 용기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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