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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엘리 Mar 18. 2024

버리는 것도 능력

   큰딸아이의 취미이자 능력은 집안 정리이다. 그 아이가 마음먹고 지나간 자리는 태풍이 지나간 텅 빈 하늘과 같다. 그 태풍이 나에게도 불었다. 나는 오래된 물건을 모으길 좋아한다. 그리고 일단 손에 들어온 물건은 잘 못 버린다. 안 버리는 게 아니라 못 버린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버려야 하나, 버리면 안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못 하고 만다. 버리지 않는 결정을 했다고 하기에는 버리지 않는 결정에 단호함이 없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엄청난 사건이 생겼다.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쌓아 두는 차고가 텅 비어 버렸다. 외할아버지와 같이 살던 큰딸이 보다 못해 두 팔 걷어붙이고 버리기에 나선 것이다. 20년을 넘게 우리와 함께했던 물건들이 검고 커다란 쓰레기 봉지에 담겨 한쪽에 널브러져 있었다. 쓰레기 무더기를 보고 있자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쓰레기 봉지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내가 버리지 못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버리지 못한다고 해서 옆에 끼고 살뜰히 들여다보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든 물건들의 정체도, 존재도 알지 못하는 것들이건만 왜 이리 마음을 비우지 못할까? 무엇이 있던 자리인지는 모르지만 허전해진 빈자리들을 보면서 마음이 허해졌다. 새삼 그 물건들의 의미가 하나하나 살아나 내 손에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텅 빈 차고를 보고 놀라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고 딸이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릴 수밖에 없는 정당성을 나에게 몸으로 말로 내보인다. “엄마 기한이 10년전인 참깨를 발견해서 버렸어.”  “어! 그래 잘했어.”,  “ 엄마 왜? 마음에 안 들어?”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와 깨끗하네. 힘들지 않아? 고생이네” 마음에 없는 빈말이 주저리주저리 나오고, 내 빈말에 마음이 상한 큰딸의 움직임은 더 무거워졌다. 딸아이와 나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골이 있다. 우리의 대화는 같은 장소에 있다고 착각하면서, 각자의 골짜기에서 소리치는 메아리와 같다. 서로의 말을 이해를 못 하고 다른 말을 주고받는다. 딸은 나의 말에 아주 쉽게 깊은 상처를 받는다. 착한 딸로 엄마한테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간섭은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결론으로 딸아이와 나는 서로 자기는 그런 뜻으로 한 얘기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상처를 주고받는다.  *영어 단어 히어링은 자기중심적이고, 리스닝은 타인 중심적이다. 우리는 서로의 입장으로 상대방의 얘기를 리스닝 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얘기를 하기 위해 히어링을 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그저 엄마한테 넋두리를 한 것이고 그저 “괜찮아? 네 문제가 아니야. 너는 괜찮아.”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데 엄마는 잔소리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도 괜찮다고 했는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화가 나 있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면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이곳을 가득 채웠던 것들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 때문에 딸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나의 이런 행동은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난 정말 왜 이리도 한심할까? 쉼 없는 질문들을 나에게 퍼부었다. 다른 한쪽 구석에는 미처 봉지에 넣지 못한 것들이 보였다. 그 물건들은 나에게 과거의 추억을 소리치며 가라앉아 있었던 미련을 용솟음치게 한다.  파란색 무늬가 그려진 빛바랜 그릇들은 결혼 초 미국에 와 살림이 없던 시절 가라지 세일을 하는 일본 부부한테 사서 예쁘다고 손님들의 부러움을 샀던 것들이었고, 부활절마다 아이들의 웃음으로 만들어진 계란을 풍성하게 담아주던 찌그러진 바구니들, 시어머님과 살 때 그 많던 김치들을 묵묵하게 담아내던 그릇들…. 아, 쳐다보지 말 것을…. 내가 썼던 물건들을 아무리 딸아이라도 내 허락 없이 마음대로 했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에 화가 물 밀쳐 올라왔다. 큰딸아이가 집에 언제 갈까? 큰딸아이가 집에 가면 그 물건들을 다시 봐야겠다. 집도 내 집이고, 물건들도 내 것인데 딸아이 눈치를 봐야 하다니.

제 딴에는 그 많은 물건을 힘들게 정리하고 기대했던 엄마한테도 바라던 칭찬이 오지 않자 큰딸아이도 시큰둥해져서 외할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부엌과 차고를 오가며 이랬다저랬다 시소처럼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큰딸한테 내가 못 한 일, 내가 못 할 일을 한 것에 대한 칭찬과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할망정 안 좋은 기분으로 돌려보냈으니 내 마음에도 무거운 돌덩이가 앉아 있다. 한바탕 정신 줄을 놓고 있다가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다. 이 상황을 지혜롭게 지나가야 한다. 능력 밖에 일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볼 뿐…. 문득 소유에 대해 정통한 법정 스님의 글이 생각나 어설프게 그의 책을 뒤져 본다. 이럴 땐 나보다 먼저 산 현자의 경험을 훔치는 지혜도 나쁘지  않을 듯하여.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그렇지! 이 한마디가 내 마음에 와닿는다. 그리고 의미를 곰곰이 곱씹어 본다.  본래 하나의 물건도 없다. 본래 아무것도 없으니 내 마음먹기 나름이다. 그 물건들도 나 같은 어떤 사람이 고이고이 쓰다가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업(業)을 나와  인연이 되어 이어받아 잘 사용해서 손해 볼 것이 없건만 집착에 사로잡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처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뭘 가졌는지도 모르고, 또 뭘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것에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마음을 두어 소중한 딸의 마음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 쓰레기 봉지들은 다음날 깨끗이 치워졌다. 마음이 평온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주말에 큰딸아이와 같이 쇼핑을 하러 가야겠다. 말로는 딸아이의 마음을 달래줄 능력이 나에겐 아직 없다. 오히려 더 문제를 크게 만들어 둘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것이다. 그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나의 미안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미련한 끈적함을 없애기 위해 어느 때보다 열심히 손을 씻어본다.


그림 이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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