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60화

찾아가는 진료, 오래 머무는 마음

by 시인의 숲

햇볕이 내려앉는 좁은 시골길, 약속 시간이 다소 지체된 관계로 앞서가던 차량이 한껏 속도를 낸다. 뿌연 흙먼지가 뒤따르던 차창으로 불어와 시야가 흐릿하다. 바람 때문일까. 흙먼지를 뒤 집어 쓴 나뭇잎이 고개를 빠끔히 내민다.


오전 9시 30분경, 일행이 도착한 곳은 부게세 릴리마(Bugesera Rilima)에 있는 보건소다.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치아를 살리러 오는 것이 아니라 치아를 포기하러 온다.



접수 후 대기표를 받는다


건물 벽 쪽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보건소 직원이 환자들의 진료 차트를 적고 대기표를 나눠준다. 그리고 대기표를 받은 사람들은 반대쪽 장의자에서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이들 중에는 가까이서 온 주민도 있지만 새벽부터 걸어온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는 손수건을 입에 가져다 대고, 어떤 이는 어린아이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오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설렘과 긴장이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다.


진료 도구를 세팅하다


앞선 차량에서 내린 다섯 명의 봉사자들은 차량 한가득 싣고 온 의료장비를 부지런히 건물 안쪽으로 옮긴다. 텅 비어있던 공간으로 테이블을 옮기고 그 위에 가지고 온 진료도구를 세팅한다. 그 줄의 한쪽에서 의료 장비를 체크하고 있는 한 남자, 그는 르완다 Hope Dental Center에서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는 장경민 선교사다. 평소에 이런 봉사 현장에 함께 하기를 원했던 나의 바람처럼, 눈에 비치는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조금 더 깊숙이 이 땅에 발을 내딛는 느낌이다.


부게세라에는 보건소가 열다섯 군데 있는데 이 중에서 큰 병원인 냐마타(Nyamata)병원 근처를 제외한, 열두 군데 보건소를 한 달에 한 곳씩 돌아가면서 (매주 수요일, 세 차례) 방문한다. 일행들은 서로 맡은 분야대로 조용히 움직였다. 오랜 시간 함께한 숙달된 모습이다. 봉사 때마다 와서 일행을 돕고 있다는 키 큰 젊은 여성은 다른 병원의 치과의사라고 했다. 일하는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와 궁금하던 참이었다. 진료실이 다 갖추어지고 환자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진료에 앞서 둥글게 원을 그리더니 방문객들을 맞이하며 자기소개를 한다. 예고 없는 이런 자리가 약간 당황스럽긴 하다. 내 차례가 되어서 뭐라 뭐라 그간 입에 붙어있던 영어 문장들을 뱉었다. 이왕이면 여러분의 봉사의 손길에 감사드려요!라고 할 걸 하고 뒤늦게 생각한다. 이렇게 간단한 소개가 끝나자,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오늘 진료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치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의 70~80%가 발치를 원한다. 그러니까 보건소에서는 발치까지만 가능하고 더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인근의 큰 병원으로 연계된다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치아가 여러 개니까 한두 개 뽑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낯선 풍경이지만, 저들이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 아프리카에는 일어나고 있다. 치아를 뽑는다는 사실보다 치아에 대한 소중함의 차이가 너무 다르게 계산되는 세계다.


구강교육을 하고 있다


진료 전에 지역 교회의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시는데 오늘은 동행하지 못했다. 진료에 앞서 보건소 앞마당에서 구강교육도 하고 있다. 봉사자가 치아 모형으로 칫솔질하는 올바른 방법을 설명한다. 이 시간이 끝나면 진료가 시작되고 료가 끝나면 환자들에게 칫솔과 약, 그리고 복음 책자를 나눠준다.


초진을 거쳐 본 진료를 한다


초진에서 혈압과 기초진료를 한 후 본 진료를 받는다. 장경민 선교사와 두 분의 의사가 함께 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진료 의자에 누워있는 할머니 한 분과 나의 눈이 마주쳤는데 가슴이 떨린다는 제스처를 해서 같이 웃었다. 그녀는 옷자락을 손으로 꽉 잡고 있었다. 무심코 진료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풀밭에서 놀고 있는 개구쟁이들 모습이 보여서였다. 초록과 하늘의 푸르름이 평화로운 시간 한 자락을 내게 선물해 주는 듯했다. 남자아이 두 명이 창살 틈으로 얼굴을 가져다 대고 인사를 한다.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자 아주 짓궂은 포즈를 취한다.


보건소 마당에서 기도하다


오늘 접수된 환자의 수는 대략 72명 정도다. 이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려면 오후 4시까지는 이어질 거란다. 보건소를 나오기 전에 마당에서 기도를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학회 일정을 마치고 르완다를 방문한 은기수 장로님, 그리고 장경민 선교사와 남편이 함께 했다. 이들 뒤로 배경처럼 르완다 깃발이 흔들리고 있다. 잠깐 머무는 동안에도 정이 들었던지 우리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아이들의 멋진 포즈


조금 전에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울던 어린 여자아이가 엄마 치맛자락을 잡으며 수줍게 웃는다. 아이의 블라우스 끈이 풀려 있어서 내가 묶어 주려고 몸을 숙이며 가까이 갔던 것인데 화들짝 놀라며 울어버렸던 것이다. 순진하고 겁먹었던 눈빛이 평온을 찾아서 다행이다. 조금 전 진료실 창밖 풀밭에서 짓궂은 포즈를 취했던 남자아이 둘이 멀어져 가는 차량을 향해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준다. 흙먼지 속으로 아이들 얼굴이 희미해져 간다.



적도 아래 정오를 향해가고 있는 르완다의 하늘이 매우 푸르다. 아픈 고통을 견디고 견디다가 결국 보건소를 찾아온 환자들, 오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먼 길을 걸어갈 것이다.


부게세라 릴리마 보건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2025. 12/3 수요일에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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