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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Feb 01.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8화

살아가면서 맺는 관계에 대하여 

르완다에서 알게 된 동생 같은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Louise, 그녀는 호텔 객실을 청소한다. 호텔의 큰 방 4개와 작은방 4개, 하루에 그녀가 맡은 룸은 8개다. 내 방 청소시간은 대략 10시 전후였는데 청소를 끝내고 나면 나는 루이제와 잠깐씩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처음에 내가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할 때 루이제는 약간 당황하는 듯했다. 그런 것이 흔치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편히 앉으라고 눈빛을 건넸지만 그녀는 살짝 걸터앉았다. 


그녀의 키가 그리 크지 않은 것도 내게는 더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르완다에 와보니 왜 그리 키 큰 사람들이 많은지 늘씬한 사람들이 많아 놀랍기도 했다. 내가 건네준 과자를 두 손으로 받아 입안에 조용히 집어넣으며 웃음 짓는 그녀, 손가락 모양으로 생긴 달콤한 과자인데 겉 봉지에도 finger라고 적혔다. 어찌나 맛나게 먹는지 삼키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행여 부스러기가 흐를까 봐 조심스레 입에 넣고 먹는다. 주스를 마시고 마냥 생큐 생큐 한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낯선 이와 쉽게 유대관계를 맺고 살았다. 예를 들면 가스검침을 왔다거나 아니면 정기소독을 왔다거나 해서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에게는 차 한잔 대접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들은 우리 집에 오면 잠시라도 쉬며 다과를 아주 편하게 들곤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잠깐씩 나누다 갔다. 행여 거리에서라도 만나면 그녀들은 너무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이를 보고 딸은 엄마의 MBTI는 esfp라며 결코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란다. 그러니까 엄마는 아프리카에 가서도 아주 적응을 잘할 수 있을 거란다.  


그녀가 처음 청소를 하기 위해 내 방을 노크했을 때 약간은 수줍어하는 듯한 그녀의 인상을 나는 기억한다. 그녀의 짧은 파마머리와 굵은 눈망울과 특별히 하얀 치아가 눈에 들어왔다. 피부색이 검어서인지 유독 하얗게 보이는 치아는 사람을 아주 건강하게 보이게 했다. 조금 작은 목소리로 굿모닝~~ 한다. 청소를 해도 되냐고 묻는 그녀에게 나도 흔쾌히 오케이~로 화답하며 그녀를 맞이했다. 


르완다는 문마다 열쇠가 꽂혀있다. 식탁 끝에 내 노트북과 루이제와 나의 모습을 담았다. 


르완다는 열쇠문화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각 문마다 열쇠가 꽂혀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계속하듯 나는 어느새 이런 모습에 친숙해져 간다. 가끔 열쇠를 이리저리 돌리며 객실문을 열 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는데 그 때문에 루이제가 한참 기다려야 할 때도 있었다. 


Louise, 내가 그녀의 이름을 물어본 것은 그녀가 똑같은 시간대에 서너 번 방문했을 때였다. 나의 하루는 늘 식탁 끄트머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시작되었다. 코드 꼽기가 어중간해서 부엌 쪽에 자리를 잡는 게 편했기 때문인데 부엌 청소를 하려면 코드를 넘나드는 불편이 있었다. 그녀는 먼저 화장실과 욕실 청소를 하고 안방을 청소했다. 그리고 부엌과 거실, 때로는 베란다에 있는 탁자까지 닦아주곤 했다. 파란 플라스틱 통의 세제물을 풀어 바닥을 밀며 내가 넘어질까 슬라이딩 슬라이딩하며 조심시켰다. 나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놓아두었는데, 알고 보니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없어서 음식물과 일쓰레기를 함께 버리고 있었다. 


루이제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자주 쓰는 것 몇 개를 제외하고는 영어를 잘 못한다. 우리가 구사하는 영어는 아주 짧은 문장과 단어뿐이고 그냥 웃고 손짓으로, 때로는 눈으로 그냥 말한다. 그래도 어지간한 것은 소통이 된다. 내 얘기를 잘 모를 때 Louise는 에~~~ 하며 눈을 껌벅껌벅한다. 대충 내가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함께 웃는 것이다.



사람의 표정에서 웃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느껴진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만 보았는데도 마음이 간다. 르완다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나면 그들이 참 잘 웃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낯선 이에게 웃으며 인사를 먼저 건넨다. 누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아프리카에 가면 사람들 피부가 너무 검고 눈만 빨갛다고 하는데, 그런 곳에 가서 살 수 있겠냐면서 걱정해 준 적 있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그들을 모르고 하는 말인지를 이곳에 와서 그들을 직접 보고야 알았다. 


루이제와 나는 아이 셋을 가진 엄마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내가 아이 셋이라며 손가락을 꼽았을 때, 루이제의 눈은 점점 커졌고 우리는 마치 무슨 동지라도 만난 듯 손바닥을 서로 마주쳤다. 다른 점이 있다면 루이제는 4살, 6살 아들과 8살 딸이 있고, 나는 두 딸과 아들이 있는데 이들이 장성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나는 아이들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이곳에 오기 전 함께 식사하던 사진이었는데 큰딸과 사위 그리고 곧 태어날 우리 축복이, 둘째 딸과 막내아들, 그리고 우리 부부가 환한 모습으로 웃는 사진이었다. 루이제는 와우! 하며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루이제의 남편은 우간다에 일을 하러 갔다고 했다. 나는 작은 수첩을 꺼내어 통성명을 했다. 내 수첩 중앙쯤에 적힌 그녀 이름과 그 밑에 적힌 내 이름을 보며 루이제, 영미 이렇게 발음을 해보았다. 


수첩에 적힌 루이제와 내 이름


며칠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 3일 동안 두 사람의 다른 청소부가 객실을 청소했다. 열심히 해 준 젊은 여자에게 팁을 건네주자 짐 정리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일 체크아웃하냐고 묻는다. 그날, 우리가 체크아웃을 해야 할 이른 시간대에 루이제가 급히 문을 두드렸다. 청소를 하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손에는 청소도구를 들고 있지 않았다. 아마도 전날 일하던 청소부가 내 소식을 알려주었던 것 같았다. 나는 짐을 싸는 중이었으므로 루이제에게 나중에 청소하면 좋겠다고 말하며 문을 닫았는데 루이제의 얼굴 표정이 수척해 보였다. 닫히는 문 사이로 멍하니 루이제가 서 있었다. 그런데 루이제 얼굴이 왜 상했을까? 무슨 일이 있었나? 


정착할 집으로 이사를 위해 1층 로비에 짐을 다 내려놓고 코이카에서 제공해 주는 차량을 기다리고 있다가 루이제에게 전화를 했다. 루이제 Good by, God Bless You , Have a nice day... 내가 할 수 있는 문장을 다 했던 것 같다. 아마 더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좀 더 했겠지만 영어를 탈탈 털어도 몇 가지밖에 할 수가 없어서 전화는 일찍 끊어졌다. 어쨌든 이로써 인사를 끝냈다. 



이사 후 짐 정리를 하고 루이제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자꾸 사진전송이 실패로 뜬다. 구글 앱 실행이 어째 신통찮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저녁 늦게야 It's ok라는 답변이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의 이름 알파벳도 더듬거리며 쓰던 그녀가 생각났다. 내가 보낸 문장을 일찍이 읽고서도 늦은 답을 보낸 루이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답을 나는 오래 기다렸던 것이다. 외로운 곳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되었던 아프리카 르완다의 그녀, 다른 층에서 청소를 하다가도 나를 보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 또한 쓰던 양산을 높이 들어 올려 흔들어주었다. 


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살아가다 보면 이런 사람을 몇 명이나 만날 수 있을까. 문득문득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지금 이 시간 또 어느 룸 청소를 하고 있을 루이제를 생각하며 신호를 보낸다. 전화기 너머 반갑게 인사하는 루이제! 대화보다는 많이 웃었다. 그녀와 언젠가 다시 만나면 맛있는 것 좀 사줘야겠다. 과자 한쪽 한 입 가득 베어 물고 감사 인사를 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루이제와 통화를 위해 적어 두었던 문장들이다. 지금 내가 더듬더듬 영어를 알아가듯 르완다의 삶도 내 속으로 천천히 밀려오고 있다. 


Hello Louise, Are you busy? I live in kiyobu.I'm doing good. 

You're doing well, too. See you later. 

우리의 안부 전화는 이렇게 짧게 끝났지만 그 여운은 서로를 즐겁게 했다.

루이제의 목소리와 반가운 웃음 속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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