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양자물리학

by 고석근

사랑의 양자물리학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폐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다. - 알랭 바디우



이현주 동화작가의 그림책 ‘내가 좋아한 여름, 네가 좋아한 겨울’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표지 그림에는 두 남녀가 꽃밭에 눈을 감고 나란히 누워, 이어폰을 하나씩 귀에 꽂고 음악을 듣고 있다.


띠지에는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라는 글자가 크게 쓰여 있다.


꼼꼼하고 논리적인 성격의 남자 주인공 준이는 파랑, 밝고 명랑한 성격의 여자 주인공 연이는 노랑이다.


‘준이는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닮은 점을 더 많이 발견했고 사랑이라 확신했다.’


‘늘 지나던 골목길도 그의 손을 잡고 걸을 때면 어떠한 휴양지보다 더 따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작은 말도 손톱 밑에 박힌 가시처럼 거슬렸다. 갑갑하고 불편한 것들이 자꾸 늘어났다.’

연이는 ‘자신의 틀에 맞지 않는 준이가 점점 불편했다.’


끝내 준이와 연이의 사랑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


‘사랑은 온전히 나와 너를 인정하는 것이다. 온전한 나와 너인 채로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온전한 나, 온전한 너’라는 게 있을까?


근대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최소단위를 원자로 본다. 삼라만상은 원자들이 모여 이루어져있다고 설명한다.


근대의 인간관과 같다. ‘사회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다.’ 근대물리학의 인식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는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가 개인이라는 말에 쉽게 수긍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이 남에 의해 침해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고를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할까? 준이와 연이처럼 자신들의 색깔, 파랑과 노랑을 지닌 채 서로 사랑하려 할 것이다.


물은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만나 만들어진다. 그런데 물을 가만히 보자. 산소와 수소의 성질은 전혀 없다.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소와 산소의 고유한 성질은 없다. 현대양자물리학은 원자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현대양자물리학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물질로 보이는 것들과 텅 빈 허공은 모두 에너지의 파동, 율동이다. 결국 모든 물질세계, 허공은 하나의 에너지 장(場)이다.


준이와 연이가 근대물리학이 아닌 현대양자물리학을 공부했다면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그렇게도 굳건히 자신들을 지키려했을까?


그들이 스스로를 무한히 변화, 생성하는 존재로 보았다면, 사랑도 무한히 변화, 생성하는 것으로 만들어갔을 것이다.


그들은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기적을 체험했을 것이다. 파랑과 노랑을 고집하지 않고 천변만화하는 색깔의 세상을 만들어갔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1인치의 사랑만을 필요로 한다.

그 이상의 사랑을 원치 않는다.

〔......〕

약초로 구운 닭 가슴살 한 쪽만

테이크아웃해가는

작고 앙증맞은 쇼핑백에 담을 만큼의

순간의 시장기를 면할 만큼의

그런 사랑이 필요한 때.


- 박영우,《1인치의 사랑》부분



우리는 ‘1인치의 사랑’을 한다. 그 이상의 사랑은 자신을 죽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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