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 시대 2

by 고석근

축의 시대 2


사람에게 비상(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트리나 폴러스는 그의 동화 ‘꽃들에게 희망을’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한 애벌레의 이야기입니다.’


호랑애벌레는 혼잣말을 한다. “그저 먹고 자라는 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삶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해. 그저 먹고 자라기만 하는 건 따분해.”


그래서 호랑애벌레는 그 이상의 삶을 찾아 길을 나선다. 그러다 그가 보게 된 건 하늘로 치솟는 커다란 기둥이었다.


그것은 ‘애벌레의 기둥’이었다. 호랑애벌레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꼭대기에는 뭔가 대단한 게 있을 거야!’


‘밟고 올라가느냐? 아니면 발밑에 깔리느냐?’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애벌레들의 기둥 만들기.


그러다 호랑애벌레는 깨닫는다.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우리들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 아닐 거야!’


호랑애벌레와 친구 노랑애벌레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서게 된다. ‘진정한 자아’는 그들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이다.


영혼은 우주와 하나인 마음이다. 우리가 깊은 감동을 받을 때, 우리는 전율한다. 영혼과 우주가 함께 춤춘다.

‘자아’는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나’다.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해야 하는 어떤 역할이다. 남자, 여자, 회사원, 공무원, 팀장...... .


자아는 끝없이 세상 속에서 자신을 돋보이고 싶어 한다. 이 욕심의 늪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다.


자본주의는 이 욕심의 세계를 한껏 부추긴다. 겉으로 보면 지상 낙원처럼 보인다. 만화경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깊은 권태에 몸부림친다. ‘뭔가 더 나은 삶이 있을 거야!’ 우리 안에 ‘비상(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공기처럼 가볍기 때문이다.


엄혹한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시인 이상은 울부짖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석기시대의 원시부족 사회는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했다. 모든 부족원은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러다 철기시대가 도래하면서, 만인은 만인의 적이 되었다. 인간의 ‘자아’가 팽창하기 시작했다. 인간기둥 쌓기가 시작되었다.


이때 등장한 성현들. 그들은 자아(에고)를 넘어선 진정한 자아, ‘참나’를 찾으라고 가르쳤다.


자신의 참 모습을 찾아 길을 가던 호랑애벌레와 노랑애벌레는 늙은 애벌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노랑애벌레가 묻는다. “제 눈에 보이는 것은 당신도 나도 솜털투성이 벌레일 뿐인데, 그 속에 나비가 한 마리 들어 있다는 걸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자본주의는 ‘개인의 소유’를 인정하는 제도다. 고대, 중세에는 신의 대리자인 왕이 모든 것을 소유했다.


소유는 눈에 보여야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물질의 세계만 본다. 그게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물질도 사실은 에너지의 율동이라 이 세상의 실상은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에너지의 율동은 온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우리 안에서 흥, 신명이 솟아올라올 때다. 이때 우리는 우주의 실상과 하나가 된다.


우리의 몸은 물질의 이치에 따라 태어나고 병들고 죽지만, 몸의 실상인 에너지 장은 영원히 춤을 춘다.


노랑애벌레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늙은 애벌레를 마음으로 보게 된다면, 늙은 애벌레 안에서 나비가 부화하고 있는 것이 보일 것이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나는 거기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난 잠들어 있지 않다

난 불어오는 수천 갈래 바람이다

〔......〕

부드러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푸드득 날아가는 새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라

난 거기 있지 않다

나는 죽지 않았다


- 《무명의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부분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부활하라!”


부활은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는 존재다. ‘수천 갈래 바람이다’ ‘푸드득 날아가는 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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