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길 ​

by 고석근

스승의 길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소크라테스



20여 년 전에 우연히 성인 대상의 강의를 했다. 그 강의가 지금까지 가지를 치며 이어져 오고 있다.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어 무작정 귀촌했을 때, 평소에 알고 지내던 ㄱ이 놀러왔다. 원두막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데 그가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ㅇ 국회의원이 ㅍ 문화센터를 만들었는데 자신은 실무자로 일한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도 무료하던 차라 좋다고 했다. 첫 강의하던 날, 은근 신이 났다. 교사를 할 때는 자주 시계를 보았다. ‘언제 끝나지?’ 그럼 아이들도 나를 따라 자주 시계를 보았다.


그래서 평소에 ‘나는 가르치는 게 체질이 아닌가봐.’ 하고 생각했는데, 성인 대상의 강의는 달랐다. 학교 교사와 달리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었고, 또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떠들지 않았다.


두 달 코스의 강의였는데,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이 어느 날 나를 보자고 했다. 계속 내게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오후반이 생겼는데, 이 반은 종강이 없었다. 새로운 수강생이 들어오고 알아서 ‘졸업’을 했다.


지금은 이런 형태의 공부 모임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다. 2,30대에 온 제자들이 5,60대가 되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강의의 방향과 목표가 희미했다. 내가 삶의 방향을 찾아 방황하고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뒤풀이가 좋았다. 밤 한 두시가 되어 자전거를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음주 운전을 하면 자전거는 알아서 길을 찾아 갔다.


나는 강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원 강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자 같은 스승도 아니고, 도대체 어떻게 강의를 해야 하는 거야?’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그때그때 맞춰 강의를 했다. 내 몸에서 익혀서 나오는 말은 없었다. 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뿐이었다.


그러다 크게 아프고 나서 길이 보였다. 육체가 허약해져서야 영혼이 깨어나는 듯 했다.


강사가 아닌 ‘스승’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몸이 약해 그때부터는 항상 앉아서 강의를 했다.


공개 강의를 가서 의자를 준비해 달라는 말을 하는 게 참으로 고역이었다. 강의하기 전에 몰래 술을 마셨다. 술기운이 있어야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몸은 허약했지만 정신만은 어느 때 못지않게 또렷이 깨어있었다.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제대로 읽지 않은 고전들을 읽은 척하며 강의를 했었다.


고전의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 저리게 와 닿았다. 성현들의 말씀이 내 마음의 살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인간만이 한다. 인간 외의 동물들은 본능으로 살아가기에 가르치고 배우는 게 단순하다.


하지만 인간은 문화를 이루고 살아가기에 가르치고 배울 게 많다. 그런데 인문학은 ‘인간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기에 지식만으로는 가르칠 수 없다.


어쩌다 쌤이 되어 강의를 한 게 20여 년이 지났다. 어설프게 시작한 강의, 이제 나의 소명이라는 걸 느낀다.

가르치며 배우며 인간의 길을 함께 간다. 나이 들어가는 제자들의 얼굴을 보며 ‘스승의 길’을 가야 하는 의무를 느낀다.


인류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대로 나를 계속 반성해가면 내가 인간의 길을 제대로 걸어갈 수 있을까?


지금 네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길이 되느니


- 서산대사,《눈길을 걸을 때》부분



‘스승의 길’은 인간의 길일 것이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는 길이 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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