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狂者)를 위하여

by 고석근

광자(狂者)를 위하여


군자(君子)와 함께 할 수 없다면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함께 하리라. - 공자



나는 30대 중후반에 ‘지랄’을 하기 시작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되어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았다.


‘지랄총량의 법칙’에 의해 나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갔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싸움 한번하지 않아 마음 깊이 숨겨져 있던 지랄이 마구 터져 나왔다.


어느 날 밤에는 패싸움을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전철이 타니 다들 쳐다보았다. 내가 쏘아보자 그들은 슬슬 나의 눈을 피하기 시작했다.


모임에 가서는 자주 주정을 부렸다. 썰렁해진 술자리에서 혼자 나와서는 꺼억꺼억 울었다. 누가 봐도 나는 광자였다.


어머니께서 나의 이런 모습을 들어 시고는 우셨다고 한다. “큰 아이가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


40대 중반을 넘어서자 ‘푸닥거리’의 효험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마음이 말갛게 씻겨 지기 시작했다. 세례를 받은 느낌이었다.


고대 중국의 성인(聖人) 공자는 일찍이 말했다. “군자(君子)와 함께 할 수 없다면 광자(狂者)나 견자(狷者)와 함께 하리라.”


군자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 성인을 향해 중용(中庸)의 도를 행하는 사람이다. 항상 마음의 중심(中)를 잡고 일상(庸)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지만 항상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세상의 힘 앞에서 치욕을 당하다보면, 마음은 자꾸만 중심을 잃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류에 따라 살아간다. 소인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소인배 중에서 사람들에게 덕이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언뜻 보면 후덕한 사람처럼 보인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 줄도 안다. 어디나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공자는 이런 사람, 향원(鄕原)을 가장 싫어했다. 그는 아예 성인이 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사람 좋다는 사람들이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칭송받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끔 언론 매체를 타기도 한다. 노학자의 모습으로, 양심적 지식인으로, 사회 원로의 모습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항상 처한 상황에 맞춰 적당히 살아간다. 튀지 말자! 따라서 마음의 중심, 본성(양심)이 깨어나지 않는다.


본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은 수없이 좌절한다. 세상의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울 힘이 없기에 광자, 미친 자가 되기도 하고 견자, 고집불통이 되기도 한다.


광자나 견자의 길은 수도(修道)의 과정이다. 본성을 깨우는 힘겨운 길이다. 하지만 이런 길을 거치지 않고 군자의 길을 갈 수 있을까?


일생 동안 한 번도 광자나 견자가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인간의 네 부류, 군자, 광자, 견자. 향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 지도 몰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엔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싹수 있는 놈은 아닐지라도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닐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오토바이 훔치다 들켰다는 녀석

오락실 변소에서 담배 피우다 글렸다는 녀석

술집에서 싸움박질하다 끌려왔다는 녀석

모두 모두가 더 없는 밀알이다


- 조재도,《너희들에게》부분



중국 근대 소설의 아버지 루쉰은 말했다.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시인은 오토바이를 훔치고, 담배를 피우고, 싸움박질하다 끌려온 녀석들이 ‘모두 모두가 더 없는 밀알’임을 알아본다. 이 시대의 예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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