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살자

by 고석근

바르게 살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 속담



대학졸업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그런 시험이 다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졸업논문 없는 대학졸업이라니, 참 쉬운 시대였다.


졸업시험 보는 날, 지도교수님이 들어오더니 칠판에 크게 몇 문제 써 놓고는 휭하니 나가버렸다.


‘엉?’ 이렇게 시험 보는 거야? 우리는 잠시 술렁였지만, 다시 자세를 가다듬으며 시험 문제를 풀었다.


나는 묘한 유혹을 느꼈다. ‘컨닝 한번 해보자!’ 나는 그때까지 컨닝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겁이 많아서였는지, 정직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허리를 곧추세웠다. 옆 아이 시험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아, 이 느낌이구나!’


나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나를 부모님의 대리자로 여기셨다. “네가 잘해야 동생들이 잘한다.”


나는 장남답게 나를 가꾸어갔다. 동생들에게 독재자로 군림하고, 그 당시 시골아이들이 흔히 하던 ‘서리’ 한번 하지 않았다. ‘바르게 살자!’가 나의 신조로 자리 잡아갔다.


학창 시절을 모범생으로 보내면서 사람들이 나만큼만 정직하게 살아가면 이 세상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모범생을 ‘범생이’라고 희화화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니? 왜?’


어느 날 TV에서 영화를 보다가 동네 양아치의 팔에 ‘바르게 살자’라고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동물들의 속임수가 나왔다. 수컷거미가 암컷거미에게 구애를 하면서 ‘곤충 선물’을 준다. 암컷거미는 거미줄에 칭칭 감겨 있는 선물을 푸는 동안 수컷거미는 암컷거미와 사랑을 한다.


헉! 속이 텅 비었다. 사랑을 끝낸 수컷거미는 화가 난 암컷거미를 내버려두고 쏜살 같이 도망을 친다.


수컷물새가 커다란 물고기를 암컷물새 입에 넣어주며 구애를 한다. 암컷물새가 물고기를 맛있게 먹는 동안 사랑을 끝낸 수컷물새는 암컷물새 입에 물린 먹다 만 물고기를 뺏어 입에 물고는 휙 날아간다.


‘다른 생명체들도 서로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구나!’ 그럼 인간세계의 그 많은 불의(不義)들도 지극히 당연한 건가?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치는 세상을 내버려둬도 되는 건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세계는 붕괴할 것이다. 다른 생명체의 세계로 교체될 것이다.


동물세계에 있는 불의들은 그 수가 적기에 동물세계는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 다 함께 바르게 살지 말자고 하면, 이 세상은 한 순간에 아비규환의 세계가 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맹자가 양혜왕을 뵈었다. 왕이 말하였다. “선생께서 천리를 멀리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역시 내 나라에 큰 이로움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하필이면 이로움(利)을 말씀하십니까? 다만 인의(仁義)만이 있을 뿐입니다.”

맹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 세상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왕이 이로움을 노리면 모든 신하, 백성들이 이로움을 노리게 된다.


우리가 살기 힘든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짜가들’ 때문일까? 우리는 안다. 우리 사회의 윗물이 흐려서 우리 사회 전체가 혼탁하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맹자의 가르침대로 윗물, 지배세력들에게 이로움을 넘어서 인의를 바로 세우게 해야 한다.


흐린 윗물에 대해서는 별로 분노하지 않고 흐린 아랫물에 대해 과도하게 분노하는 우리 사회의 풍조에 대해 풍자하면서 나온 말이 ‘범생이’일 것이다.


또한 양아치의 팔에 새긴 ‘바르게 살자’도 작은 것들에게만 분노하는 우리들을 조롱하는 말일 것이다.


정직하게 살아온 나는 전혀 정직하게 살아오지 않았다. 진정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려면, 흐린 윗물에 대해 분노해야 한다. 작은 정직에 집착하는 삶은 큰 불의를 용인하는 비겁한 삶이다.


선거 때마다 뽑을 후보자가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후보자들이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얼마나 큰가? 인의의 차이가 오십보나 나지 않는가?



산서에서 오수까지 어른 군내버스비는

400원입니다


운전사가 모르겠지, 하고

백 원짜리 동전 세 개하고

십 원짜리 동전 일곱 개만 회수권 함에다 차르륵

슬쩍, 넣은 쭈그렁 할머니가 있습니다


그걸 알고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가

있는 욕 없는 욕 다 모아

할머니를 향해 쏟아 붓기 시작합니다

무슨 큰일 난 것 같습니다

30원 때문에


미리 타고 있는 손님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운전사의 훈계 준엄합니다 그러면,

전에는 370원이었다고

할머니의 응수도 만만찮습니다

그건 육이오 때 요금이야 할망구야, 하면

육이오 때 나기나 했냐, 소리치고


- 안도현,《열심히 산다는 것》부분



‘귀때기 새파랗게 젊은 운전사’의 훈계와 ‘쭈그렁 할머니’의 응수가 만만치 않다.


지켜보는 승객들은 끼어들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모두 모두 ‘열심히 산다는 것’의 풍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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