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어요

by 고석근

알 수 없어요


진실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하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10여 년 전,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갈 때였다. 갑자기 고속도로가 낯설게 보였다.


햇빛에 번쩍거리는 고속도로를 보며 현기증을 느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애써 외면했다. 어느 날엔 길을 가다 참을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종종 걸음을 치며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순대국밥을 먹으며 막걸리를 곁들여 마셨다.


간신히 몸을 추슬러서 약국에 들어가 감기약을 사먹었다. 뭔가 엄청난 것이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큰 병이 내게 태풍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두어 달 뒤에 밤에 크게 아프고 나서 대학병원에 갔다.


나는 미리 알아차렸어야 했다. 태풍이 불어오기 전 날의 고요 같은 미세한 공기의 흐름들을.


내가 이 전조들을 미리 알아차려 대비했다면, 병이 깊어지기 전에 미리 예방했을 것이다.


병의 전조는 낯설고 기묘하게 나타나지만, 나의 '현실'이 잘못되었기에 '실재'가 그렇게 왜곡되어 보이는 것이다.


내가 전조들의 실상을 세심하게 알아차렸다면, 나는 나의 기존의 삶을 반성하고 진정한 나의 삶의 방식을 찾아갔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무의식이 전해주는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 우리는 진실이 두려워 그 메시지를 애써 외면한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이런 익숙한 삶에 균열을 내는 사건을 만날 때 우리는 ‘실재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거울 단계’를 겪는다고 한다.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며 ‘나’라는 의식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 자아는 언어를 배우면서 ‘상징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인간 세상은 온갖 상징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런 두 세계를 거치며 인간은 세상 속의 인간이 되는 것이다. 환상의 세상이다. 하지만 이 환상 속의 인간은 가끔 낯선 세상을 만난다.


상징계의 틈을 비집고 나타나는 ‘실재계’다. 실제의 세상이다. 병이라든가, 사고가 번개가 치듯이 실재계를 보여준다.


이 찰나를 우리는 낚아채야 한다. ‘오늘도 무사히...... .’를 중얼거리며 자신에게 최면을 걸지 말고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는 빨간 약과 꿈에 취하게 해주는 파란 약 중 무엇을 먹을지 고민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빨간 약 대신에 파란 약을 선택한다. 익숙한 ‘환상의 세상’이 편안한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바로 우리 곁에 있는데 우리는 두려워 눈을 감는 것이다. 모래에 머리를 처박은 채 몸을 다 숨겼다고 착각하는 타조처럼.


한 수행승이 도가 뭐냐고 묻자 조주 선사가 말했다. “밥은 먹었는가?” 수행승이 대답했다. “네, 밥은 먹었습니다.”


조주 선사가 말했다. “그럼. 설거지나 하시게.” 이 순간, 그 수행승은 번개에 맞은 듯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그 찰나에 만나는 세계가 도의 세계다. 파란 약에 취해 있던 몸이 화들짝 깨어나는 순간이다.


이 찰나를 꽉 잡아 삶의 전부로 만들어내면 부처가 될 것이다. 이 세상은 화엄의 세계, 온 우주가 꽃으로 가득 피어난 세계가 될 것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한용운,《알 수 없어요》부분



시인은 어느 날 문득, ‘알 수 없어요’를 경험한다. 그 순간,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을 느낀다.


실재계, 진여(眞如)의 세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