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

by 고석근

원죄


권력은 언제나 위험하다. 권력은 최악을 끌어들이고 최고를 타락시킨다. - 에드워드 애비



독일의 극작가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깨어진 항아리’를 읽었다. 네덜란드의 어느 마을. 마르테 부인이 깨어진 항아리의 범인을 잡아달라고 소송을 한다.


판사 아담은 권위의 상징인 가발도 없이 법정에 나타난다. 얼굴은 상처투성이다. 그는 몹시 당황하고 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법률 고문관 발터가 도착한다. 그는 각 지역을 돌며 재판소를 검열하는 소임을 맡고 있다.


재판이 열리기 직전, 아담은 마르테 부인의 딸 이브에게 다가가 은근히 협박을 한다. 그녀의 약혼자인 루프레히트가 장차 살아 돌아오기 힘든 전쟁터에 징집될 것이라고.


순진한 이브는 재판관이자 촌장인 아담의 도움으로 사랑하는 약혼자 루프레히트를 구해주려 한다.


항아리를 깬 범인을 찾는 법정 공방이 벌어진다. 재판과정에서 아담이 말한 징집통지서는 가짜임이 밝혀진다.

아담은 전날 밤 가짜 진단서를 위조하여 루프레히트의 병역을 면제해주겠다면서 이브의 방에 갔다가 루프레히트의 출현으로 도망친다.


루프레히트가 아담을 쫓아가고 아담은 이브의 방에서 밖으로 뛰어내리다 가발을 잃고 상처를 입는다.


청순한 이브는 자신의 순결을 의심하는 루프레히트에게 실망하면서도 그를 위해 끝까지 침묵을 지키려한다.

결국 이브의 고백으로 아담의 죄상이 밝혀지고 아담은 줄행랑을 친다. 발터는 그를 파직하고 재판은 종료된다.

저자 클라이스트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인간의 원죄를 다루기 위해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를 등장시킨 게 아닐까?


성경에서는 뱀의 유혹을 받은 이브, 이브의 유혹에 넘어간 아담의 행위가 인류의 원죄라고 되어 있다.


클라이스트는 그 원초적 죄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는 것 같다. 국가의 공권력을 등에 업고 이브를 유혹하는 아담.


하지만 아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굳건한 이브. 이브의 깨어진 순결을 상징하는 ‘깨어진 항아리’의 등장에 의해 오히려 아담이 몰락하고 이브는 잃을 뻔했던 명예도 되찾고 약혼자도 지키게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원죄는 인류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최초의 인류 사회 원시부족사회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산천에 먹을 게 풍부했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항상 즐겁게 놀다가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도 따 먹고 물고기도 잡아먹었다.


그러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먹을 게 부족해졌다고 한다. 일을 해야 했다. 일을 하려면 많은 장정이 필요했다.


성경의 원죄는 이러한 초기의 인류사를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농사를 지으며 인간은 땅을 가진 자와 땅을 갖지 못한 자로 나눠졌다.


땅을 가진 자들은 법률을 만들어 사람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아담과 같은 타락한 인간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클라이스트는 아담의 타락을 인간의 원죄로 본 게 아닐까? 국가의 공권력의 이름으로 사적인 이익을 취하는 인간.


얼마나 끔찍한 인간인가? 그는 이브에 의해 진실이 드러난다. 클라이스트는 여성에 의해 인류가 구원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그런데 아담의 빈자리는 누가 메꿀까? 클라이스트는 답을 주지 않았다. 그의 ‘깨어진 항아리’는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고 한다.


아담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인류의 치열한 노력이 아닐까? 클라이스트는 오래지 않아 그의 작품 공연이 막을 내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들어왔을 때 이 고귀한 분들께서는

모두 안에 있었다

그들은 술을 퍼마시다가 그녀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이제 막 강에서 올라온 그녀는 도대체 영문을 몰랐다

그녀는 길 잃은 인어였다


〔......〕


그녀는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깨끗해져

빛 속의 하얀 돌처럼 빛났다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헤엄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헤엄쳐갔다


- 파블로 네루다,《인어와 술꾼들의 우화》부분



시인은 아담은 술꾼이 되고 이브는 길을 잃은 인어가 되어 죽음을 향해 헤엄쳐가야 하는 슬픈 이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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