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라

by 고석근

반항하라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런 생각. 마치 본성의 바탕으로부터 우러나듯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아무 죄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 알베르 카뮈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모님 집에서 지냈다. 학교에 일찍 가는 날은 난감했다. 몸이 약하신 이모님에게 아침밥을 일찍 준비해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지각을 했다. 학교에 가면 조기 청소가 다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벌칙으로 방과 후에 유리창 청소를 했다.


어느 날은 담임선생님이 가까이 오시더니 유리창을 닦는 나를 유심히 보셨다. 나는 반항심이 솟아났다.


일부러 천천히 유리창을 닦았다. 담임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셨다. 나를 뭐라고 생각하셨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창피한 반항이었지만, 그때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유리창 밖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지각할 수밖에 없는 내 마음은 왜 고려하지 않으세요?’ 나도 모르게 내 안에서 솟아 올라온 생각이었다.


카뮈는 말했다. “인간에게 가장 자연스런 생각. 마치 본성의 바탕으로부터 우러나듯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은 바로 아무 죄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나는 평소에는 담임선생님의 의중을 미리 헤아리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렇게 ‘소극적인 반항’을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때 묘한 쾌감을 느꼈다.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작디작은 경외감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다. 카뮈의 말처럼 ‘나의 본성의 바탕에서 저절로 떠오른 그때의 생각은 아무 죄가 없다고 그래서 그 생각에 따른 행동도 죄가 없다’고.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 뫼르소는 아랍인의 칼날에 하얗게 반짝이는 햇살에 ‘죽이자!’는 생각(충동)이 번뜩 떠올랐을 것이다.


그래서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는 ‘움직이지도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그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온 한 생각과 이어 뒤따르는 행동들. 이것들은 무죄인가?


뫼르소는 실정법을 어겼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에 그에 대한 처벌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죄의식’ 같은 것은 느끼지 않는다. 이러한 인간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내가 담임선생님에게 소극적으로 반항했기에 망정이지 내가 만일 총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순간, 살의가 내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왔다면? 나는 괴물이 되어버렸을까? 이러한 나를 카뮈는 뭐라고 할까?

나, 뫼르소라는 한 개인을 놓고 보면 법의 잣대로 잴 수 있지만, 인간은 타고나길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그럼 세상은, 인류 전체는 한 개인의 행동을 단순히 법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뫼르소가 햇빛 때문에 살인을 한 ‘그의 깊은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래서 카뮈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오는 생각은 무죄라고 했을 것이다. 한 인간에게 일어나는 그 마음을 인류는 살펴야 한다! 그건 인간의 조건이다!


그 마음을 살피지 않는 세상에게 뫼르소는 끝까지 반항한다. ‘반항 정신’이 있기에 인간은 끝내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행히 뫼르소처런 살인범이 되지 않고 무사히 노년까지 살아왔다. 무사히 살아있다는 건, 그만큼 비굴하게 살았다는 것도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반항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 살인범이 되지 않고도 반항하는 인간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길> 부분



반항하지 않는 인간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로 사는 인간일 것이다. 카뮈는 그런 인간을 ‘이미 자살한 인간’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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