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지 마!
사냥꾼도 세상을 두려워하는 순간 토끼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강경수 작가의 그림책 ‘배고픈 거미’를 재미있게 읽었다. 깊은 숲 속에 무시무시한 거미가 살고 있었다.
거미는 자신이 쳐 놓은 거미줄에 결려든 건 뭐든지 다 먹어 치운다. 파리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거미줄에 걸렸다.
앵앵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마귀가 날아왔다. 사마귀는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렸다. 파닥거리는 소리를 들은 개구리가 뛰어왔다.
개구리가 거미줄에 걸려들고, 개구리를 먹으려던 구렁이가 걸려들고, 구렁이를 먹으려던 올빼미가 걸려들고, 올빼미를 먹으려던 호랑이마저 걸려들었다.
그들은 왜 거미줄에 걸려들어 꼼짝하지 못했을까? 조금만 발버둥을 치면 거미줄은 다 찢어져버릴 텐데.
파리가 걸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사마귀는 몸이 얼어붙었던 것이다. 평소에 허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파리가 아니었던가!
그런 파리가 저렇게 꼼짝도 하지 못하다니? 사마귀는 처음 본 거미줄의 손아귀 앞에서 완전히 힘이 빠져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차례로 개구리 구렁이 올빼미 호랑이가 어처구니없게도 거미줄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이다.
니체는 말한다. “사냥꾼도 세상을 두려워하는 순간 토끼에게조차 업신여김을 당할 것이다.”
파리가 소리쳤다.
“우린 이제 끝난 목숨이야. 배고픈 거미가 우리를 몽땅 먹어 치울 테니까!”
파리의 말에 동물들은 모두 겁에 질렸다. 동물들은 배고픈 거미에게 살려달라고 싹싹 빌었다.
거미는 호탕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한 번만 봐 주지.” 거미는 거미줄을 툭! 끊어 주었다.
동물들은 우르르 달아났다. 거미가 파리에게 소리친다. “넌 남아 봐.” “네?” 거미는 파리 한 마리면 족했던 것이다.
아주 오래전 어릴 적에 들은 얘기다. 한 노인이 밤에 산길을 가다 뒤따라오던 도깨비에게 두루마기를 붙잡혔단다.
아무리 애원해도 도깨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두루마기를 꽉 붙잡고 놓지 않더란다. 노인은 밤새 끙끙대다 지쳐 쓰러졌단다.
아침에 나무하러 가던 이웃 아저씨한테 발견되었는데, 그 노인의 두루마기가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노인은 곁에 쓰러져있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두루마기가 도깨비에게 붙잡혔다고 생각하니까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나뭇가지한테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호랑이한테 붙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는데, 한번 쫄게 되면 몸이 굳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하룻강아지는 호랑이가 무슨 짐승인지도 모르기에, 백수의 왕 호랑이 앞에서도 전혀 쫄지 않는다.
정신을 갖고 사는 인간만이 쉽게 쫄게 된다. 정신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면 인간은 하룻강아지만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쉽게 쫄게 되는 인간이 쫄지 않고 이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방법이 있을까? 그 답은 ‘사즉생(死卽生)’이다.
큰 위기가 닥치면 죽기로 작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안의 깊은 무의식에서 심층심리학자 융이 말하는 심리적 원형들이 깨어난다.
전사가 깨어나 용기를 주고, 현자가 깨어나 지혜를 주고, 마법사가 깨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 준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 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 고정희, <상한 영혼을 위하여> 부분
시인은 ‘상한 영혼을 위하여’ 노래한다.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가기로 목숨 걸면’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