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인간다움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든 신뢰, 호인다움, 온화한 것 등을 마지못해 던져버리게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봄이다. 산수유가 꽃을 피우더니 개나리 진달래가 꽃을 피운다. 저 꽃들을 곧 질 것이다.
그래서 봄은 슬프다. 힘없이 지는 꽃들을 봐야하고 툭 툭 떨어지는 꽃들을 봐야 한다. 다음 해에 다시 저 꽃들은 피어난다.
나의 마음이 자연스레 흐른다면, 꽃을 반가이 맞이하고 그리고 기꺼이 보낼 수 있으리라.
마음이 한 곳에 고여 있는 것, 집착이다. 불교에서는 인생의 고(苦)는 ‘집착’에서 온다고 한다.
ㄱ 선사가 만행을 하고 있었단다. 어느 마을에 들어갔는데, 한 과부가 그를 유혹하더란다.
ㄱ 선사의 마음은 과부에게 흘러 그녀의 집에 하루 묵게 되었다고 한다. 밤이 깊어 그들의 마음이 하나로 어우러졌다고 한다.
그때, 툭! 마당의 감나무에서 홍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선사는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마당으로 달려가 홍시를 집어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선사가 집을 나서자 과부도 따라나섰다고 한다. 그녀는 선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그의 연인 마리가 “나를 사랑해?”하고 묻자 그는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뫼르소는 마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항상 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니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사랑해!’라고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한다.
그렇게 사랑이란 단어를 마구 쓰다 보니, 우리의 마음이 사랑이라는 단어에 고착될 수가 있다.
그 단어에 한 번 사로잡히면 그 단어가 그를 부리게 된다. 그래서 스토킹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
오래 전에 고향 친구가 싸움에 말려들어 유치장에 갇힌 적이 있다. 그때 경찰이 내게 말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이렇게 되었네요.”
경찰이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음, 그 친구는 정말 법 없이도 잘 살아갈 착한 사람이지.’
그런데 우리는 ‘법 없이도 잘 살아갈 사람’이라는 말을 함부로 해도 될까? 뫼르소 같으면 그런 말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말들을 쉽게 쓰게 되면, 누구나 노력만 하면 이런 인품을 쉽게 갖게 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니체는 말했다.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이다. 인간다움의 원천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호인다움... 등을 마지못해 던져버리게 한다.”
그는 ‘법 없이도 살아갈 사람, 호인’을 던져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야말로 정신의 최후의 해방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호인들을 자주 본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을 듣는다.
언뜻 보면 그는 ‘인품’의 화신처럼 보인다. 그의 마음은 모든 사람에게 흐르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삶의 원칙이 없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에 목을 매는 사람이다. 결국엔 그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의 짐을 지게 된다.
그는 고통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고통을 직면해야 한다. 고통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막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봐야 한다.
우리의 몸은 물질이면서도 에너지다. 자유롭게 머물고 자유롭게 흘러 다니고 싶어 한다.
나무 한 그루도 고통 속에서 자란다. 고통을 온 몸으로 안는다. 긴긴 겨울 내내 몸을 한껏 웅크렸다가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자 굳었던 다리를 뻗고 손가락을 편다.
툭툭 살갗을 뚫고 잎이 돋아나고 꽃을 피운다. 하지만 때가 되면 그의 마음은 다시 웅크려든다.
나무의 마음은 일생동안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흐른다. 우리는 나무에게서 삶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 장 루슬로, <세월의 강물> 부분
‘다친 달팽이를’ 도우려는 마음은 측은지심이 아니다. 약자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고 싶은 권력욕이다.
삼라만상은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인간도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