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다
우주적인 몸, 내 몸이 차츰차츰 모든 것에 닿는다. - 장 뤽 낭시
오래 전 ㅂ 복지관에서 강의할 때, 항상 뒤풀이를 했다. 잔치는 밤이 이슥해서야 끝났다.
끝나면 골목에 나와 빙 둘러서서 서로 손을 잡고 조그맣게 노래를 불렀다. 주택가가 아니라 남들에게 피해는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회원들에게 서로 하나가 되는 몸을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의 파동으로 만나며.
아마 우리들의 온 몸의 파동이 서로 얽혀들며 하나의 장을 형성했을 것이다. ‘홀로이면서 함께’
그때의 제자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녀들은 그때의 황홀경을 회상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참 좋았어요.’
한 유치원에서 모래놀이를 하는데, 각자 모래를 갖고 놀게 했단다. 나는 상상하며 소름이 끼쳤다.
각자 혼자 노는 아이, 그 아이는 자라면서 한평생 혼자 놀게 될 것이다. 나중에 다른 사람과 함께 놀게 되더라도 서로를 사람으로 생각하기가 힘들 것이다.
서로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땀 냄새를 맡으며, 환희에 젖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말들.
그런 경험 없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함께 모래를 갖고 놀다가 사고라도 날까봐 그렇게 각자 놀게 했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에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았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하다. 그리고 너무나 소중하다.
그 추억으로 나는 적어도 사람을 근원적으로는 미워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왔을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가장 경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 없이 살 수 있을까?
낭시는 말했다. “우주적인 몸, 내 몸이 차츰차츰 모든 것에 닿는다.” 우리의 몸은 무한히 다른 존재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는 나의 몸, 프라이버시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몸을 철옹성처럼 지키려한다. 그 결과 우리의 몸은 어떻게 되었는가?
다들 사무치는 외로움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몸은 다른 존재를 향해 늘 열려있어야 한다.
사람들 속을 흘러가는 우리의 몸을 가만히 보자. 물방울 하나인 우리의 몸이 다른 물방울들과 함께 강물을 이루며 흘러가는 것을.
우리의 몸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의 파동이다. ‘나’라는 생각만 누그러뜨리고 보면 우리의 몸은 한없이 남들과 하나로 어우러지는 몸이다.
그래서 나는 무심히 산길을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내 몸은 서서히 산천초목과 하나로 어우러져간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내 몸은 그(녀)의 몸과 하나의 파동으로 만난다. 우리의 몸은 언어 없이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쉼 없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게 문제다.
알아채지 못하면 우리의 몸은 고인 물처럼 와글거린다. 밖으로 흐르고 싶어 안달을 한다.
우리가 알아채기만 하면 우리는 우리의 몸이 다른 몸들과 만나 거대한 하나의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완전함을 느낀다. 누가 “너는 누구냐?”하고 물으면, 우리는 “나는 나다.”하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넘어서서 우리의 몸은 완전해있기 때문이다.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지다가
어느새 나는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 최승자, <너에게> 부분
우리의 몸은 늘 목마르다. ‘네 심장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는 태풍의 눈이 되고 싶다.’
인간 세계의 온갖 악은 ‘너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고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