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
아무리 길고 복잡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인생은 단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그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에서 모든 게 꿈인 세상을 보여준다. 인간을 만든 도인(道人), 창조자도 자신이 누군가의 꿈속에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보르헤스는 신(神)도 환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실재 세상은? 아마 그는 그건 체험해야 알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인생은 단 한순간에 이루어진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영원히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는 영원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땅 위에 서 있는 분홍빛 토담은 달빛을 비추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는 저 분홍빛 이상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그 순박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30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이다…… .’
나도 그런 체험을 한 적이 있다.
오래 전에 사는 게 너무나 괴로워 잠시 절에서 지낸 적이 있다. 밥만 먹으면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신비롭게 바뀌었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은은한 달빛 같은 게 서려있었다.
나는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알 수 없는 충만감에 휩싸였다.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보르헤스가 경험했듯이, 세상은 정지해있었다. 나는 여기 있고, 움직이고, 나만이 시간이 있었다.
오! 나는 경이로움에 젖어 그 추운 겨울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3시간이나 걸어서 고향집으로 갔다.
누가 내게 욕을 해도 그냥 빙긋이 웃을 것 같았다.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뒤 그 ‘깨달음’을 더 이상 밀고 가지 못했다. 세상의 실상을 보았는데, 그 실상을 움켜잡지 못하고 다시 허상의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장남이니까, 나는 남편이니까, 나는 교사이니까...... 나는 세상 속의 글자 하나가 되어 살았다.
그러다 문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그때의 체험을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보르헤스는 이 세상이 허상임을 보여주기 위해 ‘픽션’이라는 단편소설집을 남겼다.
‘이 세상은 픽션(허구)이야! 실재는 따로 있어!’
아마 궁극적 진리를 찾아 나섰던 석가는 온갖 공부를 하며 일찍이 영원의 체험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그 뒤 그는 혼자 공부했다. 어느 날 밤, 하늘에 떠 있는 샛별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일체의 의혹이 남아 있지 않은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니체식으로 말하면 ‘정오의 정신’이 된 것이다.
그림자 하나 없는 환한 태양의 시간, 석가는 그 시간 속에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영원의 세계 그 자체가 된 것이다.
큰 깨달음을 얻고 난 뒤 그는 악마들의 유혹을 겪게 된다. 마지막 시험이다. 그는 쉽게 그들을 굴복시킨다.
그 악마들은 그의 내면의 어둠이었다. ‘오로지 환한 마음’ 이 상태가 실재세상이다. 왕양명도 이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죽을 때 유언을 해달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 마음이 환하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나는 이제 오래 전의 작은 깨달음을 키워가려한다. 그 작은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면 언젠가는 내가 그 나무가 되지 않겠는가?
세월과 물로 된 강을 바라보는 것
그리고 시간은 또 다른 강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강물처럼 사라져갈 것을 알며
얼굴들 또한 강물처럼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눈을 뜨고 본다는 것도 또 하나의 꿈임을 느끼며
꿈을 꾸고 있지 않다고 꿈꾸는 꿈,
그래서 우리의 육체가 두려워하는 죽음 또한 밤마다 꿈이라고 부르는
그런 죽음밖에 아무것도 아님을 알며
나날의 일상에서 사람의 나이와 세월 등의
상징을 읽으며
세월이 앗아간 인생의 아픔을
음악으로, 속삭임으로, 상징으로 바꾸어가는 일.
죽음에서 찾아낸 꿈, 석양에서 찾아낸
서글픈 황금, 이것이 시일지니,
가난하고도 불멸하는 시일지니,
여명과 석양처럼 번갈아드는 시일지니.
이따금 하오가 되면 거울 한 가운데서
한 얼굴이 우리를 빤히 쳐다본다:
예술은 바로 그런 거울 같은 거,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밝혀주는.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학> 부분
‘서글픈 황금, 이것이 시일지니,/ 가난하고도 불멸하는 시일지니,/ 여명과 석양처럼 번갈아드는 시일지니.’
시는 아이가 갖고 노는 장난감일 것이다. 아이는 죽어가는 육체로, 자신이 꿈속에 있는 것도 모른 채, 무한히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