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by 고석근

인간 실격


개인이 환경의 모순을 제어할 수 없을 때 병이 발생한다. - 미셸 푸코


독일의 작가 게오르그 뷔히너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쓴 미완성 고전 희곡 ‘보이체크’을 읽었다.


주인공 프란츠 보이체크는 먹고 살기 위해 군 대위의 이발사 노릇을 하고, 의사의 실험대상이 되어 완두콩만 먹는다.


그는 아내 마리와의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지만, 돈이 없어 세례를 받지 못해 대위에게 비난을 받는다.


보이체크가 말한다. “돈, 돈, 돈이 없는 자는 그런 식으로밖에는 자식을 낳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감정은 있습니다.”


대위는 대답한다. “자넨 도덕이 없어. 자넨 도덕적 인간이 아니야. 감정은 있다고? ...... 넌 선량한 인간이다.”

대위는 보이체크를 ‘선량한 인간’으로 만들어 자신에게 대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하이데거)’인 것이다.


보이체크는 말한다. “예, 대위님. 도덕 좋지요. 그렇지만, 우리 같은 천한 인간은 도덕을 가질만한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같은 놈에겐 본능밖에 없습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지져야 할 도리’가 아닌가? 하지만 그걸 누가 만들었나?


고대사회의 도덕률 중의 하나 ‘도둑질하지 말라’를 보자. 그 당시 남의 땅을 빼앗아 왕, 귀족이 된 자들이 만든 게 아닌가?


고대 이전의 원시사회에는 ‘소유 개념’ 자체가 없었다. 삼라만상에는 다 신성(神性)이 깃들어 있어 누가 무엇을 갖고 빼앗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보이체크가 말하는 인간의 본능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본능은 신이 준 게 아닌가?


인간이 만든 도덕으로 신이 준 본능을 억압하려는 것은, 삼라만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은 시대마다 달라져 온 것이다. 도덕은 늘 새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새로워지지 않은 도덕은 인간을 옥죄는 감옥일 뿐이다.


보이체크는 마리가 고수장과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된다. 그는 소리친다. “내가 그놈을 봤단 말이야.”


마리도 대받아친다. “(뻔뻔하게)그래서요?” 보이체크는 환청을 듣기 시작한다. “내 귀에는 무시무시한 음성이 들립니다.”


“자네 아내는 정숙하지.”하며 보이체크를 안심시키려는 대위에게 보이체크는 얼굴이 창백해져서 말한다.


“대위님, 저는 가난한 놈입니다. 세상에 가진 거라곤 아내밖에 없습니다. 농담을 하신다면.”


보이체크의 병증은 점점 더 심해진다. “나가봐야겠어. 눈앞이 빙빙 돌아. 마리의 손이 얼마나 뜨겁다고. 미치겠어.”


보이체크는 무시무시한 환청을 듣고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응, 뭐라고? 그년을 찔러 죽여? 내가?”

보이체크는 마리에게 담담히 말한다. “당신, 추워? 그렇지만 몸은 따뜻하군. 입술은 너무나 뜨거워. 몸이 차가와지면 추위도 못 느낄 거야.”


보이체크는 마리의 몸에 칼을 계속 찌른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보이체크는 도망을 친다.


보이체크는 자신에게 가하는 무지막지한 환경을 견뎌내지 못하고 끝내 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마리마저 자신을 배신하자 실낱같던 희망의 끈을 놓게 되었던 것이다.


‘보이체크’는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나타날 때마다 그에게 참회하고 그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잠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기형도, <빈집> 부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시인은 시를 쓰며 ‘빈집’을 견뎠나 보다. 그러나 끝내 그는 버티지 못하고 일찍이 하늘나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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