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by 고석근

평등


누가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기를 원하겠는가? 누가 복종하겠는가? ...... 모든 사람은 동일한 것을 원한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다르게 느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정신 병원으로 간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오래 전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때, 유명 인사들을 가끔 만났다. 그 중 몇몇 분은 내게 ‘지배와 복종’을 체험하게 했다.


한 시민단체의 집들이에 간 적이 있다. 빙 둘러앉아 각자 소개를 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작달막한 분이 자신을 ‘ㅎ 변호사’라고 소개를 했다.


헉! 그 유명한 인권변호사셨구나!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아저씨 같았지만,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었다.

명불허전이었다. 그분에게 나도 모르게 ‘복종’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배와 복종에 대해 나쁜 인상을 갖고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지.’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고귀한 가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인류가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인 평등이 아니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건,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 다른 사람과 같은 고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지, 만인이 대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다 다르게 태어난다. 타고나면서 공부를 잘하기도 하고, 글을 잘 쓰기도 하고, 운동을 잘하기도 한다.

그런 선천적인 가치들을 대등하게 존중해 주는 게 평등이다. 타고나기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서로 어떨까?


잘 쓰나, 못 쓰나 대등하게 대우해줘야 하나? 그게 평등인가? 아니다. 그들끼리 알아서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만든다.


한 시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나보다 시를 더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절벽에서 밀어버리고 싶습니다.”


당연하다. 인간은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질투가 일어난다. 하지만 정말 절벽에서 밀어버릴까?


그렇지 않다. 그 시인도 전력을 다해 시를 써 왔기에 시의 소중함을 안다. 질투와 동시에 동지애, 우애를 느낄 것이다.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의 뜨거운 감정이 그들 사이에 흐를 것이다. 하지만 인생을 전력을 다해 살지 않는 사람은 어떨까?


니체가 말하는 최후의 인간들, 자신을 더 이상 더 나은 존재로 진화화려 하지 않는 안락에 젖어 사는 인간들.

그들은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을 질투만 한다. 끌어내리려 한다. 그들에 대해 니체는 분노한다.


“누가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기를 원하겠는가? 누가 복종하겠는가? ...... 모든 사람은 동일한 것을 원한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가 최후의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모두 잘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들은 잘난 사람에게 지배받을 줄도 모르고 그들에게 복종할 줄도 모른다. 자신들이 가진 학벌, 재산 등으로 자신들의 성(城)을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잘난 사람들은 질투하고 못난 사람들은 멸시한다. 그들의 가슴은 늘 공허하다.


뜨겁게 사람을 만날 줄 모른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익의 차원에서만 만난다. 그들이 삶의 목적은 쾌락이다.


그들은 개 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쓴다. 그들은 고통 없는 세상을 꿈꾼다. 고통에 맞서며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환희를 모른다.


자신의 길을 밀고 가는 사람은 진정으로 남을 만난다. 잘난 사람에게 복종하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은 지배한다.


하지만 그건 폭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사랑이 가득한 관계다. 지배와 복종이 천지자연의 원리다.


우리가 물에게 복종하면 우리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된다. 천지자연의 뜻에 복종하면 천지자연 속에서 우리는 대자유(大自由)를 얻게 된다.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으며,

집안에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며,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나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 정약용, <홀로 웃다> 부분



인간이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의 세상을 이뤘던 건, 원시사회뿐일 것이다.


시인은 폭력적인 지배와 복종의 세상에서 홀로 웃으며 자신을 지켜낸다. 크나큰 천지자연의 이치에 복종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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