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다. - 미셸 푸코
내가 교직을 그만둘 때 퇴직금이 천만 원이었다. 작은 돈 같지만, 그 돈으로 서울강남의 작은 아파트나 신도시 개발예정지역의 땅을 사놓았다면 지금 얼마나 불어났을까?
최소한 이삼 십억이 되어있을 것이다. 로또 맞은 행운이다. 이렇게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돈으로 다른 것을 사 놓은 사람들은 별로 불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집값 폭등은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서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산다는 게 그야말로 도박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실상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바빌로니아의 복권’은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살아가는 가상의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바빌로니아에 처음 복권이 등장했을 때는 당첨된 이들에게 즉석에서 보상금을 주는 가장 초보적인 방식이었다.
사람들은 차츰 이런 복권 방식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서 행운의 숫자들 안에 몇 개의 불운의 숫자를 넣게 되었다.
사람들은 보상을 받을 수도 벌금을 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짜릿한 흥미를 느꼈고 복권은 갈수록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되었다.
복권은 ‘회사’에서 관리하였다. 회사는 추첨에서 진 자들이 벌금을 내도록 소송을 하고, 판사들은 불운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벌칙을 내렸다.
회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게 되었다. 회사는 이 시대의 절대적 권력자인 거대자본가들을 말하는 게 아닐까?
판사는 공권력을 상징할 것이다. 자본과 결탁한 정치, 정경유착. 이 시대의 실상이 아닌가?
이 시대의 철인 푸코는 말했다. “감옥은 감옥 바깥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다.”
이 말을 복권에 대비하면, 복권은 사람들이 이 세상 전체가 복권 세상이 아니라는 착각을 주기 위한 정치적 공간이 아니겠는가?
바빌로니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복권에 빠져든다. 행운의 추첨자는 현자위원회의 회원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을 수도 있게 되었다.
모든 과정이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다. 한 사회가 제비뽑기로 유지되는 것이었다. 갈수록 보상은 기발해지고 벌칙은 가혹해졌다.
백성들은 비상식적인 복권의 개선을 요구하지 않고, 보다 더 많은 이들이 복권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를 한다.
우리 사회의 실상을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우리 사회는 점점 ‘제비뽑기 사회’로 가고 있지 않는가?
우리 모두 ‘바다 이야기’ 같은 사행성 게임을 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에, 어른들은 주식, 집, 땅 투기에 목을 매고 있다.
우리는 우연에 의해 작동되는 바빌로니아를 비정상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필연으로 이 세상을 보려는 것은 안정을 바라는 우리의 두려움의 표출일 뿐이다.
이 세상의 작동 원리는 우연이다. 우리는 우연에서 질서를 찾아 안정된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우연의 세상을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우연의 세상에서 모두 투기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온 국토가 로또 판매점이 되어 있지 않은가?
국민의 대표를 뽑는 그야말로 신성한 선거들이 한탕주의가 지배하는 도박의 게임이 되어있지 않은가?
바빌로니아의 사람들처럼 본인의 행운과 타인의 불운을 먹고사는 세상은 생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갑자기 검붉은 색깔의 어린 장미가 가까이서 눈에 띄는데
〔......〕
장미가 그곳에 피어 있기 전에는, 아무도 장미를 기대하지 않았다.
장미가 그곳에 피었을 때는, 아무도 장미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 출발도 한 적 없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했구나.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이렇지 않았던가?
-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부분
우연히 피어있는 장미 앞에서 시인은 ‘아, 어떻게 우리가 이 작은 장미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하고 탄식한다.
그런데 우리는 장미 앞에서 도박을 하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