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by 고석근

과학


우리가 오늘날 실천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과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삶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본능들이 그 기능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힘에의 의지』에서



어제 저녁 강의 시간에 한 회원이 말했다. “저희 아파트 19층에 누가 꽃 화분을 갖다놓았어요. 제가 ‘ㅇㅇ의 미소’라고 이름을 써서 붙여놓았어요.”


미소라는 이름을 얻게 된 꽃에게는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그 회원이 미소라는 이름을 불일 때 그 느낌이 향과 빛으로 뿜어져 나올까?


그 회원이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꽃을 볼 때는 ‘미소’라는 이름만 보이는 거예요.”


노자가 말한 ‘명가명 비상명 名可名 非常名’이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숲 해설가가 말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가면 아이들은 이름을 모르는 꽃 앞에서는 감탄을 하며 신비롭게 바라봐요.”


이름을 모르는 꽃 앞에 선 아이들은 깊은 경외감 속으로 빠져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아는 꽃 앞에서는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과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삶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본능들이 그 기능을 멈추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기본적인 과학적 시각이다. 과학은 우리의 이성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성은 우리의 생각이고 생각은 언어다. 따라서 과학은 우리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하나의 관점이다.


그런데 천지자연이 언어로 다 해석이 되는가? 모래를 갖고 몰아지경에 빠져있는 아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래를 갖고 놀고 있을까?


화가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며 우리는 무한한 신비감을 느낀다. 왜? 별이 별로 보이지 않고 밤하늘이 밤하늘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흐라는 위대한 영혼의 눈에 의해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들이 다 사라져버린 ‘별이 빛나는 밤에’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니체는 ‘과학이 삶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본능들을 멈추게 했다’고 말했던 것이다.


과학으로 정신 무장을 한 현대인들의 ‘정신 상태’를 보자. 세상을 숫자로 명쾌하게 설명하는 과학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그들은 세상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평생 정답 찾기에만 골몰한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인터넷에서 전문가가 가르쳐주는 정답을 찾으려 한다.


인간이 타고나면서 갖고 있는 ‘통찰력, 직관력’은 점점 퇴화한다. 그의 정신세계는 갈수록 왜소해진다.


감정은 메말라진다. 항상 외부에 있는 정답에 짓눌려 살아왔기에 무의식에 짙은 그림자가 켜켜이 쌓인다.


자신의 마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오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 크다. 세상이 자신과 별개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불안하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말초적 쾌락에 자신을 맡기게 된다. 더 자극적인 쾌락을 찾아 나선다.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온갖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것들이 난무하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마취시키는 것들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이 온갖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다. 우리는 과학을 넘어서야 한다. 과학은 세상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세상의 대부분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신비다. 소크라테스처럼 ‘나는 몰라’라고 해야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아이는 소리쳐 말했다.

"너를 꺾을 테야, 들장미야!"


장미가 말했다.

"너를 찌를 테야, 잊지 못하도록, 나는 꺾이고 싶지 않아."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그래도 아이는 꺾고 말았네.

들에 핀 장미

장미는 힘을 다해 가시로 찔렀지만

비명도 소용없었다.


그저 꺾일 수밖에는

장미, 장미, 빨간 장미

들에 핀 장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들장미> 부분



원시시대의 소년은 들에 핀 장미를 함부로 꺾지 못했을 것이다. 만물에는 영혼이 깃들어있으니까.


문명인들은 꽃을 쉽게 꺾는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소년도 소녀를 쉽게 꺾는다. ‘사랑해’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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