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by 고석근

생명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없다. 알을 깨고 나온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 헤르만 헤세,『데미안』에서



나는 국민학교 다닐 때, 길에서 우연히 군인을 만나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어딘가에 확실한 소속이 있는 당당한 인간.


나이만 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군대, 의식주가 해결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존재감도 높아지는 인간.


가난한 소작농의 장남으로 자라며 나는 항상 막막했다.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수업하다 말고 교실에서 쫓겨나 땡볕 아래 신작로를 터덜터덜 걸어 집으로 왔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는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소작농의 농사꾼이 되어야 하는 걸까?


그래서 푸른 제복의 군인이 좋아보였던 것 같다. 항상 흙이 묻은 옷으로 일해야 하는 농사꾼보다는 좋지 않겠는가?


사람은 다른 동물들처럼 생명을 갖고 태어난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처럼 먹이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가져야 한다. 아무런 위치도 없는 인간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


우리 마을에 곰보 노부부가 살았다. 행색이 항상 추레했다. 우리는 가끔 그 집에 돌멩이를 던졌다.


나도 같이 던졌는데, 어떻게 내가 돌멩이를 던지게 되었을까? 누가 내게 지시한 것 같지도 않은데.


‘우리’라는 테두리에는 ‘사는 게 어느 정도는 인간다워야 해’하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나 보다.


나는 ‘우리’에서 이탈할까 두려워 그렇게 행동을 했을 것이다. 타고난 본능으로 나는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추방된 인간을 ‘호모 사케르’라고 했다.


내가 어릴 적 경험한 ‘곰보 노부부’ ‘강둑에 살고 있는 문둥이’ ‘다리 밑에서 살고 있는 거지’ 등이다.


내가 학교를 사립이 아닌 국공립학교를 다니고 직장도 안정된 공무원을 택한 것도 아마 어릴 적 경험한 호모 사케르의 공포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사회적 존재가 되어 생명을 부지하며, 나는 깊은 회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게 인간이 사는 걸까?’

중국 한대의 사마천은 친구를 옹호하다 관복을 벗고 궁형을 당하고 벌거벗은 생명이 되었다.


그는 소리쳤다. “분노가 터져서 책을 썼다.” 그는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썼다. 세상은 그에게 ‘인류 최고의 고전 중 하나인 사기의 저자’라는 옷을 입혀줬다.


그는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알을 깨고 나온 새가 된 것이다. 그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그는 신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창조했다. 그가 궁형의 치욕 속에서 울분만 토하며 살았다면, 그는 그야말로 호모 사케르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직장이 나를 가둔 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안에서 먹고 자는 게 전부인 삶, 호모 사케르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이 내게 준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나는 알 속이 너무나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악몽 같은 삶 속에서 몸부림치다 나도 모르게 알을 깨고 나오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날았다.


나도 모르게 신을 향해 날아 간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자그마한 한 세계를 창조하게 된 것 같다.


삼라만상 다 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신성한 세계들이다.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려한다.



허전하여 경망스러워진 청춘을
일회용 용기에 남은 짜장면처럼
대문 바깥에 내다놓고 돌아서니,
행복해서 눈물이 쏟아진다 행복하여
〔......〕
행복하여 밥이 먹고 싶어진다
인간은 정말 밥만으로 살 수 있다는 게
하도 감격스러워 밥그릇을 모시고 콸콸
눈물을 쏟는다


- 김소연, <행복하여> 부분


배부른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고 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배가 고팠나?

밥 가지고 인간을 치졸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여', 밥만으로 살 수 있음에 밥그릇을 모시고 눈물이 콸콸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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