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내게 보리떡 하나와 물 한 잔을 주면 제우스신과 행복을 다투리라. - 에피쿠로스
현대철학의 아버지 니체는 인간의 ‘힘에의 의지’를 가장 중시했다. 니체가 말하는 힘(Macht)은 권력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하지만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를 권력에의 의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니체는 힘에의 의지가 강한 사람은 먼저 자신을 통제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다스리는 자만이 남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을 보자. 그들은 힘에의 의지가 항상 넘쳐흐른다. 그들은 생기가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러니 그들은 남을 지배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사는 게 신나는 데, 왜 남을 지배하나?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은 생의 기운이 허약하다. 그들은 남을 지배해서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권력욕은 사디즘(가학증)이다. 남을 괴롭혀서 쾌감을 얻는 정신질환이다. 힘에의 의지가 허약한 사람은 남을 괴롭힐 힘이 없으면, 마조히즘(피학증) 환자가 된다.
사디즘 환자와 마조히즘 환자들이 만나 만드는 세상은 파시즘(전체주의)이다. 그들은 폭력적인 지배와 복종의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민주주의는 모래성처럼 위험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힘에의 의지가 충만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지구 곳곳에 남아 있는 원시생활을 하는 부족들은 생기가 가득하다. 서로 사랑을 나누며 즐겁게 살아간다.
문명사회에서는 소유를 사이에 놓고 서로 질시한다. 남을 지배하려는 권력욕에 사로잡힌다.
고대 중국의 현자 노자는 ‘부드러움은 삶이오. 굳음은 죽음’이라고 했다. 인간은 힘에의 의지가 허약해지면 딱딱하게 굳어진다.
생기를 잃어 굳어버린 마음은 권력욕에 휩싸인다. 죽음이다. 그래서 소유를 중심에 놓는 문명사회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싸움을 진화론에서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합리화해 왔다. 어느 식인종의 말처럼, 문명인들은 먹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마구 죽인다.
고대 그리스의 철인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다. 그는 끊임없이 쾌락을 추구하며 고매한 경지에 도달했다.
그는 말한다. “내게 보리떡 하나와 물 한 잔을 주면 제우스신과 행복을 다투리라.” 쾌락의 끝판왕은 성자다.
그런데 왜 현대 문명인들은 바닷물처럼 짠 쾌락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에피쿠로스처럼 성찰하는 삶을 살지 않아서 그렇다. 돈 벌고 쓰는 일에 취해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않아서 그렇다.
만일 우리도 에피쿠로스처럼 쾌락을 누릴 때마다 쾌락을 누리는 우리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면 우리의 마음은 점점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욕구는 낮은 차원에서 고차원으로 올라가게 되어있다. 마지막에는 영적인 욕구를 추구하게 되어있다.
끝내는 에피쿠로스처럼 보리떡 하나와 물 한 잔에 제우스신도 부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가 철철 흘러넘치니까 어느 누구도 부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권력의 문제로 본다. 하지만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를 전혀 권력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인간은 생명체로서 의식주가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식주에 대한 인간의 행위를 ‘경제’라고 했다.
그는 경제행위는 사적 영역이라고 했다.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 광장에 모여서 정치를 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갈까?’를 논의했다. 정치다. 공적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가정의 살림살이로 보았던 경제를 삶의 중심에 놓고 있지 않은가?
그럼 정치는 어디에 갔는가? 권력싸움이 되어버렸다. 삶의 가치를 논하던 정치는 사라지고 없다.
이제 우리는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힘에의 의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한평생 먹고 사는 문제에만 골몰하며 권력욕에 사로잡혀 사는 게 전부인 삶은 너무나 허망하지 않은가?
학교가 온통 쥐죽은 듯 조용한데
그때 잠깐 내다본
3층, 100미터도 넘는 긴 복도
끝도 안 보이는 복도 중간쯤
비둘기 두 마리 사랑을 나누고 있다
수놈은 암놈 등 뒤에 올라타
꽁지를 옆으로 살짝 돌리며 콩콩콩
잠깐 사랑을 나누고 내려와
두 놈이 아무 일 없는 듯
아장아장 다정하게 복도를 걸어간다
거참, 거참
잠깐을 눈부신 그 적막 속에
밑도 끝도 없는 저 사랑을
아무 표찰도 시험도 없는 저 사랑을
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 윤재철, <비둘기와 중간고사> 부분
비둘기는 인간에게 관심도 없다. 저들끼리 신나는데, 인간들이 보일까? 시인의 고민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