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40세가 되어도 사람이 싫어지지 않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한 일이 없는 사람이다. - 니콜라 샹포르
공부 모임 시간에 교사인 회원들이 말했다. “학생들이 복도에서 서로의 몸을 터치하면서 놀고 있더라고요.”
“‘왜 저렇게 놀지?’하고 오래도록 바라보았어요. 아이들은 코로나19로 방에 갇혀 있으면서 사람이 그리웠던 거예요.”
아, 그렇구나! 오래 전에 시골에 살 때였다. 우리 아이들도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도 이웃집 아이가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 나갔었다.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되는 것은 서로 어울려 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사람만큼 좋은 게 어디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도 좋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받게 된다. 모든 게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이라 사람도 돈으로 보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가며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김지하 시인은 ‘상처받은 짐승은 동굴 속에 내내 웅크리는 법’이라고 슬프게 노래했다.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는 다들 자신들 성으로 스스로를 유폐시키게 된다. 그래서 ‘40세가 되어도 사람이 싫어지지 않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한 일이 없는 사람이다.’
각자의 성에 갇혀 살며 온갖 게임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가? 가끔 서로의 몸을 터치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미칠 듯이 솟구쳐 올라오지 않는가?
미국 팝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상자’를 생각해 보자. 외관상 이 조각품들은 비누 브랜드 ‘브릴로’의 포장상자와 똑같이 생겼다.
작품을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들처럼 전시장에 켜켜이 쌓아올렸다고 한다. 목수에게 의뢰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한다.
내가 만일 전시장에 가서 그 작품들을 봤다면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저게 작품이라고?’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무심히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새로운 경험을 할 것 같다. 오롯이 ‘브릴로 상자’가 보이는 미적 체험.
슈퍼마켓에 가면 우리는 휘둘러보면서 제품의 상자는 보지 않는다. 내용물을 상상하지.
전시장에서 브릴로 상자를 보면, 분명 내용물은 비누가 아닐 테니까 상자만 보일 것이다.
놀라운 경험이 아닌가? 상자가 보이다니!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도 보지 못했던가?
천천히 자전거를 타고 가며 눈이 닿는 것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휙 지나갈 때와는 전혀 다른 마법의 세상이 펼쳐진다.
예술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 해야 한다.
현대는 근대를 넘어서야 하는 시대다. 근대의 이성중심중의가 만든 모든 사회문제를 넘어서야 하는 시대다.
근대는 인간의 이성으로 세워진 제국이다. 우리는 이 제국에서 오로지 물신(物神)을 섬기며 한평생 살아가고 있다.
누가 이 딱딱한 성채를 부술 것인가? 예술가다. 우리 모두 예술가의 눈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이 제국을 새로이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아예 게임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을 하지 않아도 짜릿하고 신나는 세상을.
사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상의 나날 자체가 신나는 마법의 세상이 아닌가?
미녀의 나신 절단하기
손수건으로 비둘기 만들기
신문지를 지폐로 만드는 마술은
질릴 만큼 했다
이젠 좀 더 실용적인 마술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
실용적인 마술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눈속임이 아니라 사랑의 힘
실패했다고 야유할 사람은 없지만
한 달간 맛없는 김치를 먹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할 것
그렇다고 실용적인 마술을 겁낼 필요는 없다
김치를 씻어 쌈을 싸 먹거나 전을 해먹는
마술에 도전해 보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 성미정, <실용적인 마술> 부분
마법의 세상이 사라진 자리에 ‘미녀의 나신 절단하기’ ‘손수건으로 비둘기 만들기’ 같은 마술이 횡행한다.
우리는 다시 마법의 세계를 되살려야 한다. ‘눈속임이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