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찬스
자식이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아버지가 필요한 기간뿐이다. - 장 자크 루소
큰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던 날, 나는 학교 운영 위원이었기에 귀빈석에 앉아 있었다.
졸업생 몇 명이 상을 받으러 앞으로 나왔다. 옆에 앉아있는 어머니 회장 겸 운영 위원의 딸도 그들 속에 끼어있었다.
‘아, 그렇구나! 엄마찬스구나!’ 나는 묵묵히 앉아있는 큰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큰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겠지?’ 나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담임선생님들과 식사 한 번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 입장에서 학부모와 식사를 하게 되면 그 학부모의 아이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아이들은 민감하게 느낄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내게 특혜를 베풀고 있구나!’ 나는 아무리 작아도 특권의식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특권의식을 갖는 순간, 약하게 된다. 조금만 힘든 일이 생겨도 쉽게 남에게 의존하려 든다.
나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자라며 많은 상처를 받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에 오니 웬 검은 구두가 댓돌에 놓여있다.
안방 가까이 가보니 방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올해 가뭄이 많아 소출이 적으니 임대료를 낮춰 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지주의 ‘안 된다’는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방에 들어가니 셋째 동생의 눈시울이 젖어있었다.
나는 지주가 같은 반 여학생의 아버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윗마을 초입의 큰 기와집에 산다.
나는 반장, 부반장 한 번 해보지 못했다. 그 자리는 부모찬스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듯했다.
부모찬스 한번 없이 자란 나는 일찍부터 나 혼자의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부모찬스 없이 자란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디나 뿌리만 내리면 살아갈 수 있는 야생초의 본능이 내 몸에 배어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부모찬스가 전혀 없이 자라게 했다. 큰 아이는 어릴 적 외가에서 자랐다.
주말에 갔다가 일요일에 돌아왔다. 큰 아이는 떠나는 나와 엄마를 보며, 악을 쓰며 울었다.
나를 닮아 마음이 여리고 감수성이 예민하다. 하지만 부모찬스 없이 자랐기에 혼자서 자신을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
외국에 나가 미술 공부를 하는 큰 아이가 안쓰럽지만, 꿋꿋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작은 아이는 태어나면서 계속 함께 살았다. 성격도 엄마를 닮아 외향이라 항상 낙천적이다.
회사에 다니는 작은 아이는 작년에 독립하겠다고 집을 사서 나갔다. 아내와 둘이서 사니 좋다. 두 아이는 이제 아버지가 별로 필요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각자 자신들의 길을 가며 어쩌다 친구처럼 만났으면 좋겠다. 우리가 부모찬스를 조금이라도 썼다면 우리 가족은 애증의 감옥에 갇혀버렸을 것이다.
아버지 하시는 일을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나는 모른다고 했다
〔......〕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야
나는 큰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일한 만큼 돈을 타고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 임길택, <거울 앞에 서서> 부분
나도 어릴 적에 농부인 아버지가 창피했다. 시내에서 절뚝거리며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보고 피한 적이 있다.
이제 나이 들어 부끄럽게 살지 않으신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최고의 아빠찬스는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