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소원
머뭇거리는구나! 겨울철 살얼음이 낀 시내를 건너는 사람처럼. - 노자
전금자 작가의 그림책 ‘사소한 소원만 들어주는 두꺼비’는 사소한 소원을 이룸으로써 결국엔 큰 소원이 이루는지는 이 세상의 이치를 잘 보여준다.
학교 가는 길에 훈이는 우연히 두꺼비 한 마리를 구해준다. 고마운 두꺼비는 훈이에게 사소한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훈이는 두꺼비에게 다툰 친구와 화해하게 해달라고 말한다. 두꺼비는 그것은 사소하지 않다고 거절한다.
다음으로 훈이는 싫어하는 미술 시간을 체육 시간으로 바꿔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소원 역시 두꺼비는 사소하지 않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세 번째 소원으로 훈이는 나물 반찬 대신 햄 반찬으로 바꿔 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두꺼비는 그 소원 역시 사소하지 않다고 거절한다.
훈이는 화가 났다. 수업시간이었다. 서로 냉랭하던 친구가 지우개를 빌려달라고 했다. 필통을 열어보니 지우개가 없다. 훈이는 그때 마침 두꺼비 생각이 났다.
“두꺼비야, 지우개 하나만 만들어 줄래?”
두꺼비는 훈이에게 지우개를 만들어 주었다. 훈이는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었고, 친구는 지우개를 받으며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되고, 서로 화해하게 되었다.
바로 그때 훈이의 사소한 소원을 들어준 두꺼비는 폴짝 뛰어 창문 너머로 사라져갔다.
훈이는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는 사소한 행위에 의해 결국엔 친구와 화해하는 큰 소원을 이루게 된다.
나비효과다. 북경에서 나비 한마리가 날개를 한번 팔랑하면 그 바람이 서울에 왔을 때는 태풍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나비의 날개가 일으킨 미약한 바람이 마침 지나가던 새의 날갯짓과 만나 더 큰 바람이 되고, 그 바람이 하늘로 올라가 마침 흘러가던 큰 기류를 만나면 태풍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자연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크고 작은 게 없다.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다. 한 걸음들이 모여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다.
‘큰 것과 작은 것’이라는 이분법에 빠지면,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한다는 괴상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역사상 숭고한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작디작은 개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전쟁, 살상, 폭력이 얼마나 많았던가?
혹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며 큰 것들엔 대한 관심은 아예 접어두고, 작고 소소한 것들에 매몰될 수도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며 지갑에서 돈 몇 푼 훔친 아이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한 부모는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사람이 결려 넘어지는 것은 큰 강둑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라고 한다. 하지만 길을 가며 돌부리만 열심히 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대양자물리학에서는 천지자연은 하나의 장이라고 한다.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는 하나라고 한다.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 하나가 파문을 일으키며 멀리 멀리 퍼져간다. 너와 나는 서로 얽혀 흘러간다. 우주 차원에서는 너와 나는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신이 알 수 있는 나의 마음(의식)이 있고, 도무지 알 수 없는 한량없는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우리는 그 두 마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살아야 한다. 일상의 삶에서는 의식이 중요하지만, 큰 인생의 길을 갈 때는 무의식이 가르쳐주는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그 둘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어느 하나의 마음에 고착되지 말아야 한다. 마음은 큰 바다와 같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일촉즉발 붙기 전 두 녀석이 나에게 걸렸다. 한 놈은 벌써 눈텡이가 밤텡이다. 도서실에 불러 앉혔는데도 치켜 뜬 눈이 황소 눈이다. 제 분 못 이겨 부르르 몸을 떤다. 이마가 깨져도 끄떡 않을 놈들이다. 악써대는 고함에 도
서실 고요가 유리처럼 금가고 잔처럼 부서진다.
사과할래, 안 합니다, 그럼 한번 쳐야겠어, 네, 너도, 네 좋아, 치고 싶다면 쳐야지, 나도 열받는다, 막무가내 앞에서 나도 그냥 막무가내가 되고 싶다.
그러다 문득, 우리 오 분만 가만있자, 그런 다음 치기로 하자, 멀뚱히 떨어져 앉아 삼백 초를 견딘다. 운동장에 까치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은행잎 호로로 진다. 그 새 늦가을 한 토막 서둘러 간다.
〔......〕
얼핏 신성(神性)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 조재도, <고요의 힘> 부분
파도치는 우리의 마음은 고요히 가라앉히기만 하면, 한순간에 신성(神性)에 이른다. 우리 모두 하나의 바다가 된다.
‘고요의 힘’을 아는 시인은 참 좋은 선생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