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락(同樂)
나는 지금 소수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 그리고 동정의 설교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고자 한다. 그것은 동락이다. 동정이 아니라 동락이 친구를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동정(同情)은 쉽다. 아프거나 힘든 사람이 있으면, 그(녀)와 마음이 한순간에 같아진다.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달동네를 걸으며 대문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는 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바라볼 때 살맛이 나지 않는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지만, 어디가 아프다거나 주식을 하다 쪽박을 찼다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생기가 올라오지 않는가!
그래서 니체는 말한다. “나는 지금... 동정의 설교자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그대에게 가르치고자 한다. 그것은 동락이다. 동정이 아니라 동락이 친구를 만든다.”
동정은 너무나 쉬운데, 동락은 얼마나 어려운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인간관계, 최고의 좋은 관계다.
바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관계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럴 것이다. 부부도 친구가 될 때, 좋은 부부가 될 것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어야, 좋은 사제지간(師弟之間)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는 동정을 넘어 동락의 경지로 올라 갈 수 있을까?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답은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세상에 맞춰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된다.
서로 비교하면서 어찌 기쁨을 나눌 수 있겠는가? 비교하는 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못 되어야 좋지 않겠는가?
따라서 세상의 가치를 접어두고 자신의 가치로 살아가야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게 되면, 자신의 마음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넘어서는 큰마음이 되어간다. 큰마음이 되어 가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다른 사람의 기쁨에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된다.
세상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은 큰마음이 되지 못하고 자신에게 갇혀있는 작은 마음이 된다.
계속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게 되면 마음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다. 자신의 몸만큼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남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그는 남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동정하는 척한다.
하지만 그건 약한 상대방에 대한 우월감과 소유욕이다. 사디즘(가학증)이다. 그럼 동정을 당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동정을 당하는 사람은 약한 모습으로 상대방을 조정하려한다. 마조히즘(피학증)이다. 누구에게나 어릴 적 아픈 척 비명을 지르며 부모를 조정해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 맞춰 살 것인가?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인가? 인간은 각자 하나의 세계라 자신의 길을 가야 한다.
자신의 세계가 굳건해질수록,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가 되는 신비를.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는 순교자 같다. 그러나 다시 보면 저 은사시나무는, 박해받고 싶어 하는 순교자 같다.
- 황지우, <서풍(西風)앞에서> 부분
매를 맞는 아내는 그 남자와 힘들게 이혼을 하고서 재혼을 할 때는 용케도 때리는 남자를 찾아 재혼한다고 한다.
박해받는 순교자들은 어떨까? 세상이 그들을 더 이상 박해하지 않으면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