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간

by 고석근

생각하는 인간


영혼이든 해탈이든 불변하는 실체는 없으며, 실체가 있다는 생각이 집착과 고통을 낳는다. - 나가르주나

제2의 석가 대승불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나가르주나는 인간의 모든 고통의 원인은 ‘실체에 대한 집착’에 있다고 말한다.


그의 눈으로 보면 우리가 흔히 쓰는 말에 실체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다. 우리는 요즘처럼 가물 때 ‘비가 왔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쓰는 우리는 비가 어딘가에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라는 건, 없다.


비는 내리는 것이다. 물방울이 모인 구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비다. 그럼 비는 물방울의 움직임인가?


물방울도 자세히 보면 거기엔 물이 없다. 수소와 산소의 결합이 있을 뿐이다. 그럼 수소와 산소는 있는가?


그것들도 성능이 뛰어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럼 원자라는 건 있는가?


원자도 그 안에 핵, 전자 등이 있다. 더 자세히 관찰하면 그것들도 결국엔 텅 비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있는 것(색色)’과 ‘없는 것(공空)’이 같게 되는 것이다. 그럼 이 세상은 도대체 무엇인가?


삼라만상의 무한한 율동, 춤이 있을 뿐이다. 현대양자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에너지장이라고 한다.


이런 눈으로 보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라는 건 있는가? 답은 ‘없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로 규정했다.


우리는 이 대전제가 무너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한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그럼 생각은 무엇인가? 독일의 매체 철학자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말한다. “인간의 사고 과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적 과정일 뿐이며, 주체 또한 정보에 의해 형성된 결과물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라캉의 ‘나는 생각하는 곳에 없다’는 말과 같다. 라캉은 이어 말한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있다.’


석가가 말한 ‘오로지 행(行)이 있을 뿐인 것’이다. 이 세상엔 에너지의 파동이 있을 뿐인 것이다.


에너지의 어떤 파동들이 우리 눈에 물질로 지각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재한다고 믿고 있는 삼라만상은 우리 감각의 지각일 뿐인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다 내려놓고 무심히 앉아 있으면, 온 세상이 눈부신 춤이라는 게 느껴진다.


우리는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서 그냥 아는 것이다. 안다는 건, 니체가 말하듯 생각이 아닌 애무인 것이다.


삼라만상과 내가 사랑스럽게 만날 때 우리는 온 몸으로 아는 것이다. 머리로 아는 건, ‘나’라는 한 생각이 행하는 정보의 처리과정일 뿐이다.


생각에서 해방된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까? 바람처럼 날아가며 나뭇가지를 흔들다가 싫증이 나면 다시 날아가 꽃과 노니는 존재가 될까?


아니면 다시 자신을 찾아달라고 신을 찾아 나설까? 결국 수많은 우상을 세워야 살아 갈 수 있게 될까?


원시인들은 바람처럼 살았다. 현대문명인들은 뛰어난 영혼의 소유자들만이 그런 경지를 체험하는 것 같다.


인류가 자유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며 비로소 자유를 부르짖게 되었다.


우리가 자유를 온 몸으로 행할 수 있으려면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 내었소.


- 이상, <꽃나무> 부분


시인은 무심히 꽃나무를 보다가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華嚴)의 순간을 경험했나 보다.


‘생각하는꽃나무’를 보는 순간, 그는 막달아난다. 지나고 보니, (생각하는 인간으로 돌아와 보니) ‘한꽃나무를위하여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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