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상경

by 고석근

문인상경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다. - 프리드리히 니체



문인상경(文人相輕)이라는 말이 있다. 문인들은 서로를 경시, 멸시한다는 것이다. 아마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말에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는 동료 간에 경쟁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며 직장생활을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가 만든 새로운 풍경일 것이다.


글을 쓰는 문인들은 글쓰기라는 같은 세계를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동류 간에 경쟁심을 느낄 것이다.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의 주인공 아큐도 길을 가다 같은 부류들을 만나면 갑자기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적개심을 느낀다.


짐승들도 같은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끼리 싸우지 않는가? 문제는 ‘아름다운 경쟁인가? 더러운 경쟁인가?’일 것이다.


짐승들은 대체로 아름다운 경쟁을 할 것이다. 그들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 같은 게 없을 테니까.


그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경쟁을 통한 종(種)의 생존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리지어 다니는 짐승들을 보면 한없이 아름답다.


나는 학창 시절에 ‘시튼 동물기’를 읽으며 숨 막히는 즐거움을 느낀 적이 있다. 아마 가난한 시골아이는 인간 학교의 더러운 경쟁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많은 아름다운 경쟁을 경험했다. 다리에서 뛰어 내리기, 오줌 멀리 누기, 씨름, 물속에서 오래 버티기...... .


우리는 서로를 시기하고 존중하며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런데 왜 문인들은 서로 시기하고 멸시만 하고 존중, 존경은 하지 않았을까?


그때도 인맥을 통한 무슨 찬스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글을 쓰며 서로 아름다운 경쟁을 했다면, 서로를 멸시하면서도 존경했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묻는다. “그대에게는 존경할만한 적이 있는가?” 존경할만한 적이 없다면 인생을 치열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에 ‘야인’이라는 인기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김두한 같은 멋진 ‘건달’들이 많이 나왔다.


건달은 아주 멋진 단어라는 걸 건달의 지인을 통해 전해들은 적이 있다. 건달(乾達)은 하늘(乾)과 통(達)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늘의 뜻을 지상에서 이루는 인간. 얼마나 멋진 인간인가! 건달이야말로 협객이 아닌가!


우리는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인들, 건달들을 통해 아름다운 경쟁에 열광했을 것이다.


물론 그건 드라마지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영원히 꿈을 꾼다. 꿈이 사라지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문인은 협객을 꿈꾼다고 했다. 하늘의 뜻을 지상에서 이루려 글로 고군분투하는 인간, 문인이 더러운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건 너무나 큰 고통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간절히 평등을 원할 것이다. 평등이야말로 얼마나 고귀한 인간의 가치인가!


하지만 평등이 자칫 더 이상 자신을 초극하지 않으려는 게으름뱅이의 자기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을 초극해 가야 한다. 항상 더 나은 자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게 아니라, 자연을 극복해가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연을 극복하며 이룬 사회, 문명은 정체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새로운 도전과 응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학자 니체는 질타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열등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쉼 없이 자신을 극복해 가야 한다. 그 속에서 자유, 평등의 가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아무리 더러운 그라운드에도 한 조각의 진실이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이다.

- 최영미, <인생보다 진실한 게임> 부분



시인은 ‘더러운 그라운드’에서 ‘인생보다 아름다운 게임이 축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발을 가진 동물들’의 숨 막히는 90분의 싸움. 다른 동물들은 이런 게임을 한평생 즐기다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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