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갈 거야

by 고석근

날아갈 거야


사람에게 비상(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 가스통 바슐라르



살다보면 어느 순간, 고통이 가슴에 바위처럼 묵직하게 얹히게 될 때가 있다. 그러다 그 고통이 쉽게 해결될 때, 우리는 날게 된다.


그때는 걸어가면서 몸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고스톱을 치면 행운이 계속 따른다.


왜 그럴까? 인간의 몸은 물질이면서 동시에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몸이 에너지가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 다른 사물들의 에너지와 하나로 어우러진다.


자신도 모르게 던진 화투이지만, 무의식의 눈은 상대방의 화투를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천리 밖을 내다본다는 천리안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에너지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에 쉽게 정보를 읽을 수 있다.


무당들이 접신을 하며 신통력이 생기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들은 작두 위에 맨발로 올라가도 베이지 않는다.


몸이 에너지가 되어 무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자들은 물위를 걷고 갈댓잎으로 강을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허황한 이야기일지라도, 인간에게 비상의 충동은 ‘본성’이다. 무거운 물질의 몸을 끌고 살아가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몸의 에너지 상태를 간절히 원할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는 말한다. “사람에게 비상(飛翔)의 충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새가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의 아동문학가 진보의 그림책 ‘날아갈 거야’는 한 노인의 비상의 충동을 잘 보여준다.


너무 늙어 밖에 나가기조차 힘든 할아버지는 집 안에 여러 중류의 연을 만들어 벽에 걸어두었다.


봄이 오자 창밖의 처마에 살고 있던 제비 가족들이 연을 보았다. 사람들은 연을 날리기 시작했다.


제비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언제 연을 날려요?” 할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창가로 가 하늘을 날고 있는 연을 바라보았다.


봄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와 할아버지의 연을 흔들었다. 제비가 말했다. “연아, 연아, 한번 날아보렴. 날개를 움직여 봐.”


작은 연이 날개를 움직여 천장까지 날아오르자, 큰 연도 따라 날아올랐다. 모든 연들이 창문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연을 따라 나갔다. 할아버지는 하늘을 날고 있는 연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도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할아버지는 목발을 내던지고, 두 팔을 흔들었다. 할아버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연을 따라 더 높이 더 멀리.

우리는 언제고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면 지금도 하늘을 날고 있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마음에 없는 것은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의 풍경과 바깥의 풍경은 같다.


우리의 비상의 충동이 새를 날게 한다. 그들은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한다.


할아버지가 연을 만들어 벽에 걸어놓지 않았다면 할아버지는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그리움이 있어서

저토록

종달새를 비상시키는 것일까

깊은 우물로 빨려 들어가듯

하늘 속으로 날아든다


〔......〕


하늘까지 가지 않아도

먹이는 보리밭에 있는 것을

노래 부르지 않아도

둥지를 틀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알고 있으면서.


- 싱카와 가즈에, <그리움> 부분



우리의 그리움은 종달새를 하늘 속으로 솟구쳐 오르게 한다.


종달새가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우리가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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