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질 거야

by 고석근

달라질 거야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은 아이가 태어나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큰 아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아빠, 근데 지웅이 아빠는 누구야?”


나는 큰 아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답했다. “지웅이 아빠 여기 있지.” 큰 아이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앙!”


나는 큰 아이를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아빠는 현웅이 아빠도 되고, 지웅이 아빠도 돼...... .”


큰 아이의 울음은 점점 커졌다. 그 뒤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큰 아이는 그 후 작은 아이에게 빼앗긴 부모의 사랑을 무엇으로 채워갔을까?


아이들은 동생이 태어나며 엄청난 상처를 받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독차지 하던 부모의 사랑을 난데없이 나타난 다른 아이와 나눠가져야 하다니!


아내는 작은 아이를 뱄을 때, 큰 아이에게 나날이 불러가는 배를 보여주었다. “현웅아. 이 배 안에 네 동생이 있어.”


큰 아이는 엄마 배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 생명이 태어나는 신비감에 젖었을까?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을 알았지만, 조심스럽게 동생의 아빠가 누구냐고 내게 물어 본 큰 아이.


엄마가 낳았으니 엄마 아들은 분명한 것 같은데, 아빠까지? 큰 아이는 생명의 경외감과 함께 엄청난 박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큰 아이는 작은 아이에게 형 노릇을 하느라 엄청나게 힘들었을 것이다. 시골에 살 때 두 아이에게 노란 장화를 사주었다.


시골에는 가끔 뱀이 출몰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큰 아이가 작은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옆집에 놀러가는 광경을 봤다. 둘 다 노란 장화를 신고 있었다.


앤서니 브라운 작가의 그림책 ‘달라질 거야’를 보며 이제는 다 큰 우리 아이들을 생각했다.


‘목요일 아침 10시 15분에 조셉 케이는 주전자가 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어요.’ 주전자가 고양이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부엌에 있는 다른 것들은 말끔하게 정리되어 제자리에 놓여있었어요. 냄새도 여느 때와 같았고요.’


‘집은 조용했어요... 그러다가 슬리퍼를 보았어요.’ ‘그 날 아침에 아빠는 엄마를 데리러 갔어요.’


‘아빠가 말한 게 이걸까요?’ 의자의 팔걸이가 고릴라의 두 손(앞발)이 되어 있다. 그 옆에는 웬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다.


‘조셉은 알 수가 없었어요.’ ‘어쩌면 집 밖은 괜찮을지도 몰라요. 처음에는 그런 것 같았어요.’


하지만 축구공을 발로 차자 공이 날아가며 알이 되고 알을 깨고 한 마리 새가 나와 하늘로 날아올라간다.


‘조셉은 무얼 해야 할지 몰랐어요. 자전거를 타 볼까?’ 그런데 앞바퀴가 커다란 붉은 사과가 되는 게 아닌가?


‘아니면 담 너머를 살펴볼까?’ 아뿔싸, 창문에 두 개의 커다란 짐승의 눈이 안을 들여다보고 있네.


‘조셉은 자기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고, 불을 껐어요.’ ‘그 때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면서 조셉은 보았어요.’


‘아빠와 엄마와 아기를요. “잘 있었니?” 엄마가 말했어요.’ “얘야 네 여동생이란다.” 조셉은 엄마 아빠 사이에 앉아 아기를 안아보았다.


큰 아이가 보았을 세상이다. 애니미즘, 삼라만상이 다 살아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큰 아이는 언어를 익혀가며 세상이 사물이 되어가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동생이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물들이 언어의 껍질을 벗고 제 모습을 드러내는 마법의 세상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언어는 이 세상을 사물화 시킨다. 딱딱하게 굳은 물질로 만들어 버린다. 문명이란 인간세상이 사물이 되는 과정이다.


원시인들의 언어는 시였다고 한다. 시는 마법의 언어다. 시의 언어를 잃어버린 현대인은 불행하다. 사는 게 신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시심을 회복해야 한다. 지금 쓰는 언어들을 다 잊어버리고 시의 언어를 일상에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을

뱀, 바위, 나무, 하늘


- 함민복, <소스라치다> 부분



동물들은 서로를 보고도 소스라치지는 않는다. 다들 우주의 기운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쓰며, 우주의 기운을 잃어버렸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명령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우주의 기운을 멈추게 한다. 삼라만상은 각자의 껍질 속으로 들어간다. 숨을 멈추고 긴 잠에 빠져든다.

동물들은 인간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감지할 것이다. 알 수 없는 무언가 사악한 기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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