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by 고석근

사랑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기쁨이 있는 곳에, 사람과 사람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또한 기쁨이 있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독일의 시인 릴케는 그의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성서 속의 탕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는 가족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족들의 연약한 마음에 익숙해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개를 데리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개들도 그를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개들의 시선에도 관찰과 참견과 기대와 걱정의 빛이 들어있었다. 그것들 앞에서조차 기뻐하거나 마음 상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마음의 내적 무관심’을 의도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러한 마음의 상태에 순수하게 강렬하게 사로잡혔다.’


그는 말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은 삶의 비밀이 그 앞에 펼쳐졌다.’


‘아, 얼마나 벗어던지고 잊고 싶은 것이 많았던가.’ ‘언제까지 거기 남아서 그에게 부과된 대강의 삶을 흉내 내고 얼굴까지도 비슷해지도록 방치할 것인가?’


릴케는 성서의 탕자 이야기를 달리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허랑방탕하게 살다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 신세가 된 아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아들을 불철주야 기다린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불평을 해도 그는 오로지 아들 걱정만 한다.


‘감동적인 아버지의 사랑’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런 ‘동물적인 사랑’이 전부일까? 릴케는 이런 동물적인 사랑을 넘어선 큰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혈연으로 맺어진 씨족과 부족사회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러다 철기가 발명되면서 씨족, 부족사회를 넘어선 거대한 제국이 만들어졌다.


혈연을 넘어선 사랑이 삶의 필수 요건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지구 곳곳에서 성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모두 ‘이방인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혈연만 사랑해서는 공동체사회가 무너지기 때문이었다.


성서의 방탕한 아들을 받아주는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은 씨족, 부족사회에서는 고귀한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릴케는 유럽의 큰 도시들을 떠돌며 큰 사랑을 갈구했을 것이다. 그는 말테의 눈으로 거대한 도시 파리의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559개의 병상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물론 대량생산 방식이다.’ 그는 마치 죽음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 같다고 느꼈다.


존엄한 죽음은 없었다. 워낙 많이 죽어나가기 때문이었다. 독자적인 방식으로 죽고자 하는 소망은 점점 사라질 것이다.


릴케의 탕자는 고향으로 돌아간다. ‘... 그리고 완전히 늙어버린 한 얼굴이 창백해져서 그를 알아보았다.’


‘... 그것은 사랑하는 얼굴이었다. 아, 사랑의 얼굴이었다.’ ‘이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된 자. 그는 너무 바쁘게 사느라 그런 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는 이제 느낀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으리라는 것을. 그를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그는 마을 공동체의 사랑을 넘어선 큰 사랑을 예감하고 있는 것이다. ‘단 한 분만이 그를 사랑할 수 있음을.’


‘하지만 그분은 아직 그를 사랑하려 하지 않았다.’ 대답 없는 사랑이지만, 그는 언젠가는 사랑 받는 사람에서 사랑하는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의 사랑’으로 탕자는 언젠가는 마을 사람들과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다.



신(神)의 사랑은

크다. 그리고

차다.


〔......〕


사람의 사랑은

작다. 그리고

뜨겁다.


- 신진, <사랑> 부분


우리는 서로 다가간다. 사람의 사랑은 불처럼 뜨겁게 타오르기에. 하지만 서로 데이고 만다.


사람의 사랑은 너무나 작기에. 사람에겐 신의 큰 사랑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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