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by 고석근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도스토옙스키는 육체와 영혼의 고귀함보다 불행과 악덕, 욕정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인 작가이다. -토마스 만



감옥에 갇힌 죄수들은 자신들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들이 그렇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변명하지 않을까? ‘어쩔 수 없이 내가 이렇게 된 게 아닌가? 그런데 어찌 내가 죄인이야?’


독일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살기 위해 벌레로 변신한다. 벌레로 변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삶의 무게.


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아들(오빠)은 돈을 벌어오지 못하잖아.’


결국 가족들의 압력에 못 이겨 그레고르 잠자는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가 없어도 가정은 무사하다.


감옥에 갇힌 죄수들도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죄수가 되지 않았을까? 프랑스의 철학자 푸코는 말한다.


‘범죄가 개인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


‘사회 속에서 이방인처럼 소외되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 속에서 소외되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하게 되면 살기 위해 변신하게 된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고?


인간은 자신의 본능, 욕망, 충동을 합리화하는 존재다. 인간은 결코 합리적 존재가 아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신한 죄수들, 우리는 그들의 고뇌를 진정으로 품어주고 있는가?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굶주리는 동생의 가족을 위해 빵을 훔쳐 죄수가 된 장발장과 그를 법대로 처단하려는 자베르 형사가 나온다.


장발장은 조카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기에 죄수가 되었다. 죄수로 변신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장발장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감싸주는가?


끝내 장발장을 체포한 자베르는 장발장의 인간미에 감동한다. 그는 센 강에 몸을 던지며 부르짖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는 센 강에 떨어지며 알았을 것이다. ‘인간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대승불교의 경전 ‘유마경’에서 유마거사는 병문안을 온 보살들에게 ‘중생이 아파 내가 아프다’고 말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공감에 의해 찬란한 문명을 꽃 피웠다.


하지만 인간의 공감의 능력은 아직 미숙하다. 더 발전시켜 가야 할 인간의 특성이다.


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수백 개의 극장에서 비극을 보며 서로의 아픈 마음을 나누었다고 한다.


아테네는 공감의 힘으로 서양 문화의 시원이 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아테네에서 행했던 직접민주주의를 전 인류사회가 활짝 꽃 피우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이 환자, 죄수가 되는 것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변신이다. 삼라만상의 이치는 무한 변신이다.


산에서 보는 나무들 모두 불구자들이다. 하나하나 가만히 보고 있으면, 몸이 다 비틀어져 있다. 비틀어진 몸들이 서로 엉켜 있다.


그들은 서로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서로를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를 품어준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인가! 인간들도 하나하나 뜯어보면 다들 불구이다. 성한 인간이 어디 있는가?



자네는 정말이지 멋지게 뒤틀렸군 그래


- 김민, <하회 삼신당 느티나무> 부분



시인은 뒤틀린 몸으로 살아가는 장애인이라고 한다. 그의 몸도 무한히 아름다울 것이다.


우리가 좀 더 눈을 크게 뜨고 보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