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먼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살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내면의 ‘자기(self)’는 영원불멸이다. 위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신의 불멸하는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불후의 고전 ‘파우스트’ 서두에 나오는 파우스트 박사의 탄식은 처연하다.
“나는 철학과 법학, 의학에 신학까지 연구했다. 무엇이 가장 깊은 곳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지 인식하고 그 근원을 관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파우스트가 보통 사람들 같았으면, 그 많은 지식으로 자신을 뽐내려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식인들에 대한 숭배’가 있다.
지식은 언제나 권력이었지만, 특히 근대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지식은 힘’이 되었다.
근대인들은 오랜 중세의 신 중심사회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회를 건설하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신이 없으니 마음 놓고 사회와 자연을 상대로 연구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다.
근대에 등장한 온갖 학문은 다 과학이었다. 자연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탐구하여 자연을 지배, 통제하기 위한 학문이었고, 사회과학은 사회를 탐구하여 사회를 지배, 통제하기 위한 학문이었다.
인문학도 인문과학이 되었다. 인간의 마음, 행동 등 모든 인간적인 것이 탐구의 대상이 되고 인간은 지배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영역에 대한 지식이 바로 힘이 되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표피적인 지식에 만족하지 못한다.
파우스트는 말한다.
“어떤 고통이라도 앞으로 마다않겠네. 인류 전체에게 주어진 것을 내 내면의 자아로 깊이 음미해 보려네. 내 정신으로 가장 드높은 것과 가장 밑바닥 것을 파악하고 전 인류의 행복과 아픔을 이 가슴에 쌓아올려 나 자신의 자아를 전 인류의 자아로 넓히려는 걸세.”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잡다한 지식으로 자신을 과시하려 한다. 철학자 니체는 과도한 지식을 가진 현대인은 ‘이상한 자부심과 함께 현대인 특유의 내면성이 있다’고 말한다.
좋은 삶이란 현실에서 꽃을 피워야 하는데, 과도한 지식을 쌓은 현대인들은 현실에서 도피하여 내면에서 자신의 성을 쌓는다.
그래서 현대인들의 내면은 늘 와글거린다. 머리가 복잡하다. 잡생각으로 지친다. 지친 자신을 견디다 보니 늘 우울과 권태에 시달리게 된다.
퇴폐적인 문학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된다. 현대인들은 지식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머리를 텅 비워야 한다.
머리가 텅 비게 되면, 깊은 내면에서 지혜들이 솟아올라온다. 심층심리학자 융이 말하는 인류 정신의 결정체 ‘원형들’이다.
이때 비로소 내면은 풍부해진다. ‘큰 나를 향한 삶’이 재구성된다. 파우스트처럼. 우리는 지식이 머리에 가득한 것을 풍부한 내면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인들은 잡다한 지식을 쌓아 다른 사람들과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깊은 내면의 지혜는 솟아올라오지 않는다. 그래서 늘 허탈하다. 니체는 말한다. “먼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살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대 내면의 ‘자기(self)’는 영원불멸이다.”
그대의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연꽃 한 송이가 수천의 꽃잎을 매달고 있다.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으라
그 수천의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이전에도
정원 이후에도
늘 피어 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라.
- 까비르, <내면의 꽃밭에서> 부분
우리 안에는 ‘지혜의 꽃밭’이 있다. 지식의 꽃밭은 어디에도 없다.
고대 그리스의 현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조적 삶이 인간의 행복을 위한 최선의 삶’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