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인간관계
사람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로서만 측정될 수 있다. - 프리드리히 니체
오래 전에 교직에 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간관계였다. 남자 교사들은 우르르 몰려다녔다.
그 무리에 끼지 않으면 ‘따’ 당하기 십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만나면 그 전날 밤에 술 마신 얘기를 했다.
그 자리에 참가하지 않은 교사에겐 다들 냉랭하게 대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말한다. “일은 힘들지 않은데, 인간관계가 힘들어요.”
지금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때 술자리를 주도한 교사들은 주로 ‘마초들’이었다.
평소에 은근히 남자다움을 과시하는 거친 남자 교사들. 그들이 교감, 실세 부장 교사들과 합세해 술자리를 이끌어갔다.
그러니 그런 거친 술자리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교사들에게 어찌 편할 수 있으랴?
나는 술기운으로 그들과 어울려 지냈지만, 속에서는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저런 하찮은 것들에게 내가 휘둘려야 하다니!’
사람은 정신적으로 승복하는 사람에겐 복종한다. 이건 아름다운 정신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고 살겠다는 사람은 ‘자아 숭배(self-worship)’에 빠진 사람이다.
그건 주체적인 삶도 아니고 더더구나 자유, 평등이 아니다. 인간은 더불어 사는 존재다 모래알처럼 낱개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자신의 허상, 자아를 숭배하는 정신질환자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서 자라며 우리는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이루었다. 위험한 산, 강에 놀러 가면 강자가 언제나 앞장을 섰다.
일반적인 직장에서는 폭력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전혀 존경심이 생기지 않는 상관에게 복종해야 할 때,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런 상관이 부하직원을 사랑으로 대할까?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사나이들의 의리가 멋있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주군의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구해오는 조자룡.
그를 기다리던 유비는 조자룡이 아들을 건네주자 아들을 허공으로 던져버린다. “이 하찮은 아이 하나 때문에 영웅을 잃을 뻔 했소!”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관계인가! 천하의 명장 조자룡은 유비가 자신이 한평생 복종할 만한 인물임을 알아 본 것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 그들은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이루며 날아간다. 눈부시게 아름답다.
가장 앞장 선 최강자 새가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나타나면 목숨을 걸고 대든다고 한다.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대학원 같은 직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단다. 그는 대학원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질서를 보았나 보다.
나는 문학 모임에서 아름다운 인간의 질서를 보았다. 거기에서는 학벌, 재력 같은 속물적인 가치가 통하지 않았다.
오로지 문학, 글쓰기의 능력만이 지배와 복종의 힘으로 작용했다. 방금 냉동 생선을 식당에 배달하고 온 한 시인의 맑은 얼굴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요즘 기업에서는 ‘팀제’를 택하고 있다. 기존의 조직 원리였던 피라미드형 구조로는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 인간의 잠재력이 활짝 꽃 피어나려면, 아름다운 인간의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아름다운 지배와 복종의 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자유(自由)는 아무런 구속을 받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 자신의 삶(自)을 자신 속에서 솟아올라오는 것(由)으로 구성해가는 것이다.
이 골목에 부쩍
싸움이 는 건
평상이 사라지고 난 뒤부터다
〔......〕
국수내기 민화투를 치던 할미들이 사라져버린 뒤부터다
평상이 있던 자리에 커다란 동백 화분이 꽃을 피웠다
평상 몰아내고 주차금지 앙큼한 꽃을 피웠다
- 손택수, <앙큼한 꽃> 부분
평상에서 민화투를 치는 할머니들은 아름다운 서로의 관계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지나가다 평상에 잠시 쉬었다 가는 사람들도 그 아름다운 관계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평상이 ‘앙큼한 꽃’에게 자리를 내어주자, 한순간에 골목의 아름다운 질서가 깨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