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
과학이 대상을 만든다. 아동학대 연구가 원래 없던 아동학대자를 만들고 만들어진 아동학대자는 거꾸로 연구를 정당화한다. - 이언 해킹
TV 드라마 ‘클리닝 업’에는 한 아이가 다른 아이와 싸우다 그 아이의 안경을 부러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담임선생님과 아이의 대화.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싸울 때는 상대방을 때리라고 했어요.”
담임선생님을 면담한 엄마가 아이에게 말한다. “그런 말을 담임선생님에게 하면 어떻게 해? 싸울 때는 맞지 말라는 거지... 아니 친구와 싸우지 말라는 거지...”
엄마의 변명이 헷갈린다. 아이는 엄마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앞뒤가 맞지 않는 엄마의 말에서 아이는 무의식중에 ‘아, 상황에 따라 거짓말도 잘 해야 하는 구나!’하고 생각할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말을 따르는 게 아니라 부모의 행동을 따르게 되니까. 부모가 아이 앞에서 하는 행동이 중요하다.
만일 그 아이들의 싸움이 학교폭력위원회에 가게 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자리에서 아이가 ‘엄마가 싸울 때는 상대방을 때리라고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엄마는 한순간에 부모 자격이 없는 엄마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엄마가 한 말의 맥락을 보면,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맞는 것이 좋으랴? 그런 엄마의 마음으로 그 말을 해석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이 학폭위 자료로 남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도시에서 나비가 날개를 팔랑한 것이 어느 먼 도시에서는 태풍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엄마의 말이 돌고 돌아 부풀리고 부풀려져 그 엄마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엄마가 훗날에 시의원에 출마하기라도 하면, 이 말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상대방 후보가 “이런 파렴치한 사람이 시민의 대표가 될 수 있습니까?”하고 소리치면 우리는 손뼉을 쳐주어야 할 것 같은 강박증을 느낄 수도 있다.
한 인간에게 인격이란 무엇인가? 인격(personality)의 어원은 페르소나(persona), 가면에서 파생되었다.
인격은 가면(persona)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 엄마가 아이에게 말한 것은 사적 공간의 말이었다.
학교 같은 공적 공간에서는 다른 가면을 쓰고 말할 것이다. “얘야, 친구와는 사이좋게 지내야 해! 절대 싸우지 마!”
아이가 “그럼 엄마, 다른 아이가 나를 때리면 어떻게 해?” 엄마는 공적 공간의 가면에 맞게 말할 것이다.
“다른 아이가 설령 때리더라도 너는 때리면 안 돼! 싸우면 나쁜 사람이야!” 아이가 다른 아이와 싸울 때, 엄마 말 그대로 행동했다면 엄마는 어떻게 나올까?
사적 공간이라면 “이 바보야! 너는 손발이 없어? 왜 맞고 있어? 같이 때려야지!”라고 소리칠 것이다. 아이는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는 차츰 배워갈 것이다. ‘아, 사람은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구나! 나도 빨리 여러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칼의 형상’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했다면 모든 사람들이 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저질러진 한 차례의 불복종이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닌 거지요. 그래서 단 한 사람의 유태인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으로 전 인류가 구원받는다는 것 또한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지요.’
그 엄마의 말을 그 엄마의 전체 인격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면 그 엄마의 그 말은 우리 모두가 한 말인 것이다.
그 엄마의 말을 우리 모두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모든 부모는 하지 않는가?
한 인간의 인격은 일관된 통일성이 없다. 시시각각 가면 놀이일 뿐이다. 그런 인격을 가지고 인격이 높니 낮으니 하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그럼 이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악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 사람은 죄만큼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 사회가 좋아질까? 우리 모두가 한 사람의 언행을 함께 품을 때, 우리 사회는 좋은 사회로 변화해 갈 것이다.
그 엄마의 말에 ‘아동학대자’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엄마는 아동학대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범인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엄마는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에 결국 이 세상은 범죄와의 싸움터가 되고, 우리 모두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끝내는 자신도 의심하게 되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고 말 것이다.
지금 이 세상의 어디선가 울고 있는 이
까닭 없이 울고 있는 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이 세상의 어디선가 웃고 있는 이
밤 속에서 까닭 없이 웃고 있는 이
그 사람은 나를 위해 웃고 있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부분
‘엄숙한 시간’을 잃어버린 현대인은 우리 모두 같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싸움에서 승리하건 패배하건 나가떨어지는 건, 우리 자신들이다.